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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유영 Oct 27. 2020

퇴사기2. 퇴사를 말하다.

퇴사를 마음먹은 월요일.

정답을 찾은 머리는 정답을 말할 방법과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어째서인지 팀장님부터, 부장님, 사수까지 하나같이 바빠 보였다. 나 역시 회의가 있어서 결국 오전 시간을 다 보내버렸다. 점심을 먹고서도 부서 분위기가 좋지 않아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고, 그날은 결국 선전 포고하듯 굳게 결심했던 퇴사를 실행해 옮기지 못했다. 하루 종일 눈치 게임하는 기분이었다.


다음날, 역시나 일은 바빴다. 사수는 내 업무 더미 위에 계속해서 업무를 쌓아주었다. 난도 높은 일들은 내 능력치나 기한, 기분에 관계없이 높게 쌓여만 갔다. 그때 마침 퇴사를 마음먹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더 이상 미루는 것은 회사에도, 내게도 전혀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생각에 팀장님을 소환했다.


"팀장님 저 좀 쉬고 싶습니다."


일 열심히 하던 직원이 이런 말을 뱉으면 열중의 열이 "어디 좋은 데 가?"라며 이직할 계획인지를 묻는다. 팀장님의 질문에 나는 차마 '이곳이 지겨워 나간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쉬고 싶다고 했고, 지쳤다고도 했다. 일한 지 4년이 되는 날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그때까지만 일하겠다고 했더니 팀장님은 알겠다고 했다. 그날 내 퇴사 소식은 부장님을 거쳐 대표님에게까지 전달됐다.


이날부터 다음 사람을 찾을 채용공고가 발 빠르게 올라갔고, 사수를 시작으로 대표님까지 몇 차례 불편한 면담을 했다. 그동안의 회사 생활과 앞으로의 내 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어떻겠냐는 예의상의 제안도 받았지만 감사한 위로로만 여기고 넘어갔다. 동시에 적극적으로 후임자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됐다. 내가 빠져나간 자리를 정상화하기 위해 모든 일이 아주 빠르게 이뤄지고 있었다.


퇴사를 말하고 나면 가벼움이나 후련한 마음이 들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과정 속에서 나의 걱정과 불안감은 더 컸다.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점점 옅어진 것이다. 4년이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다져온 내 자리를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아무 문제없이) 채울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또 어디에선가 이런 존재감으로 일할 수 있을까라는 불확실성 때문이기도 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 시기에는 '쉴 틈'이 사치처럼 느껴졌고, '내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빨리 이직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구직 사이트를 미친 듯이 들락거렸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본 면접에서 깨닫는다.

나는 몹시 지쳤고, 일이란 꼴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번아웃을 경험했고, 일을 다시 하고 싶기까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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