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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유영 Oct 29. 2020

퇴사기3. 면접을 보다.

질보다는 양이었다.


'쉴 틈'이 그저 사치인 것처럼 느껴졌던 이 시기에는 초조한 마음을 달래고자 마구잡이로 이력서를 넣었고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어떤 곳은 막상 전화를 받으니 구미가 당기지 않았고, 어떤 곳은 아무 생각 없이 '제출하기'를 누른 터라 회사 명도 생각나지 않아 면접 일정을 묻는 전화에 당황스러웠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지금 있는 직장과 업종도 같고, 직무도 거의 일치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나 역시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조건인 것 같아 급하게 휴가를 내고 부랴부랴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전문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갑자기 면접관 중 한 명이 물었다.


"회사의 업종도 같고, 본인이 하는 일도 같아요. 그런데 왜 이직하려고 하는 거죠?

같은 일을 하게 되면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직의 이유는 면접의 단골 질문이다. 새로운 직무였다면 '도전'이라고 말했을 것이고, 업종이 달랐다면 '넓은 경험'이라고 말했겠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달랐다.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에서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의 이직이었기에 업계도 더 작아진 것이고, 하는 일은 더 반복적일 텐데 이곳에서 오랫동안 같이 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어 하는 질문임이 분명했다.


나는 그 질문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다가 겨우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오답이었다. 환경은 언젠가 익숙해지고, 질릴 수밖에 없다. 이 사람은 결국 환경에 익숙해지면 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날 사람이니 면접관에게는 탐탁찮은 답변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 회사와의 인연은 끝까지 닿지 못했다. 하지만 그 면접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왜 이직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은 면접관보다 내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나는 좋아했던 이전 회사를 왜 떠나야만 했나? 무엇이 나를 지치게 했는가? 내가 새로운 환경, 더 높은 연봉에 만족해 이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얼마나 열심히 일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하면 또다시 퇴사를 맘먹은 날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지금은 일의 의미와 직무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쉬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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