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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전쟁, 믿는 만큼 자라는 아들?

지금부터 자기 삶을 살아가는 아들로 키우기

by 여행하듯 살고

연재 중지를 하고 숨을 골랐다.

정리가 좀 된 것 같다. 다시 폭풍이 오겠지만,

그게 무서워서 언제까지나 웅크리고 있을 순 없다


브런치북 <네 인생이니까>에 자녀 교육에 관한 글을 다시 연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던 날에, 아들 교육에 관해서는 아이만 믿고 다 맡기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엄마 의견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쪽으로 방향키를 틀었다. 이게 옳은 선택이었다는 건 역사가 증명해 줄 테다.


열흘 전 설거지 대첩 승리 후에, 그 다짐은 반드시 현실로 옮기고 말아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자리 잡았다. 조금은 억지로 시키는 부분도 있어야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날 밤 또 일이 터졌다. 아직 방향키가 완전히 전환되지 않아서, 이런 폭풍에는 배가 심하게 흔들릴 수도 있는데…뒤집히기까지 하면 어쩌나.


핵전쟁이 발발하는 건 아닌가 우려해 온 것이
현실이 되어가는 듯했다.


아들과 나 사이의 전쟁이다. 이미 서로 미사일을 한 번씩 쏜 상태다. 양국 모두 쑥대 밭이 되었지만, 최대한 피해가 없었던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 후 열흘 즈음 지났다. 그동안 크고 작은 도발들은 계속되어 왔다. 제대로 된 전쟁이 발발할지, 그냥 사그라들지 주변국에서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딸국에서는 전쟁을 약간 바라는 눈치이기도 하다. 원래 전쟁이 나면 이웃국에는 새로운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떨어지는 콩고물이 있는 법. 경쟁국인 아들국이 엄마국과 사이가 안 좋아진다면, 엄마국은 그와 대척점을 이루는 딸국에 더 우호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난 역사에서 끊임없이 확인한 바이지 않은가.


하지만 남편국은 제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이다. 모자간에 전쟁이 난다면 어쨌건 모국에서 자신에게 동맹국으로서의 예우를 갖추라는 압박을 가할 게 명백하기 때문이다. 자국과의 막내 사랑 협정도 있기 때문에 남편국은 아주 난처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런 주변국의 바람이나 우려 기대 등은 상황 개선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미 아들국과 엄마국 사이에는 눈에 뵈는 게 없어졌으며, 선전포고를 한지는 한참이 지났다. 남편국의 중재 시도가 있었으나 엄마국의 저지로 성사되지 않았다.


일촉즉발이다.


그날도 열흘 전 한 차례 있었던 설거지 대첩과 오가는 기본 내용은 똑같다.

"엄마는 왜 맨날 핸드폰 가지고 뭐 라그래? 내가 바이올린 연습하는 거랑 핸드폰이 무슨 상관이야? 내 친구 중에 하루에 16시간 게임하는 애도 있다고!!!! 왜 내 시간을 엄마가 다 통제하려고 해?"

"엄마가 뭐 다른 거 바래? 여름 내내 책 읽으라고 억지로 시키지도 않았고, 바이올린 연습만 제대로 하라 그랬는데 선생님이 너~~~~~무 연습이 안 되어 있다고 하잖아, 몇 주 째! 내가 뭐 다른 거 하라는 거 있어? 방학이라고 게임이랑 미디어도 엄청 많이 하고 있잖아!"


거기에 큰 이벤트가 하나 기다리고 있는 게 전쟁 발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몇 주전 친한 친구 집에서 올란도에 3박 4일로 놀러 가려는데, 우리 아들을 데리고 가도 되냐고 정중하게 물어왔다. 우리 집에서는 그런 감사한 일을 거절하는 법이 없다. 여행은 좋은 것이며 기회가 생길 때는, 웬만해선 절대로 빼지 않는다는 절대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여행 출발하기로 한 날이 이틀 후로 다가왔다. 그 계획이 생긴 날부터, 앞으로 4일 동안 못할 바이올린 연습을 끝내고 가야 한다고 계속 얘기했었다. 그런데 내일모레 출발인데 지난주에 집을 비운 5일이랑 또 여행으로 비울 4일 치 바이올린 연습은 다 못할 거 같다.


그래서 현실을 알려줬다. 오늘과 내일은 연습을 이틀 치가 아니라, 하루에 삼일 치씩 다해야 친구 따라 놀러 갈 수 있겠다. 선택을 해라. 연습을 그렇게 하던가, 놀러를 가지 말던가. 빨리 정해서 알려달라. 못 가면 그 친구네에 빨리 연락해주어야 한다.


아들이 난리부르스를 춘다. 그런 약속은 한적 없다면서, 더블 연습만 하기로 한 거 아니냐고 흥분했다. 이내 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세상 억울해 죽겠단다. 발까지 동동 굴리며 새끼 잡혀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하마가 보일듯한 절규를 선보인다.


탄도 미사일이 날아다닌다. 이제 더 눈치 볼 필요도, 감정을 억누를 필요도 없다. 전쟁은 시작되었다. 아들도 엄마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하루에 삼일 치 연습을 다 한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고, 엄마는 미리 연습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었냐고. 연습을 다 못하면 못 가는 거다. 선택해라. 난 변함이 없었고, 꿈쩍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흡사 이성을 잃은 인류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있는 모의 전쟁 같은 거라고나 할까. 적대국을 향한 전시 방송 내용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서로 듣지도 않는다. 그냥 평소에 들을 수 없는 높은 데시벨의 소리로 내 억울함을 성토하며, 지금 전쟁 중이라는 걸 확인시킬 뿐이다.


큰 소리가 나니, 딸이 방에서 나왔다. 낄 틈이 없다는 걸 직감하고, 전쟁터를 그냥 쓱 지나간다. 아무 일 없는 듯이, 아무것도 못 본 듯이. 딸도 안다. 화해사절단은 필요 없다. 결국 전쟁 당사국 둘이 해결해야 한다.


여행 취소라는 강력한 무기를 내세운 엄마국의 승리가 뻔해 보였던 전쟁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엄마국에게도 출혈이 큰 전투였다. 이렇게 크게 저항할 줄은 몰랐다. 논리적으로 받아들이면 분명한 결론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빨리 반기를 들 줄 알았던 아들국이 본인의 온갖 에너지를 다 빼는데, 그걸 보는 엄마국은 마음이 무너진다. 내가 어떻게 해 먹여서 짤 쌓아놓은 에너지인데, 저렇게 화내고 나면 몸 건강, 정신건강에 진짜 안 좋을 텐데. 키로 갈 에너지랑 영양분이 남아 날까.


평화롭고 행복한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전쟁이 이렇게 까지 커진 것에 내 원인도 있는 것 같다는 반성도 하고 있다. 하지만 드러내서는 안 된다. 승리가 코앞이다. 아들의 복종이라는 전리품을 챙겨갈 순간이 다 왔다는 걸 직감했다. 열흘 동안 경험했지 않은가! 자기가 먹은 것은 바로바로 자발적으로 설거지하는 것, 그 전리품은 기대 이상이었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래 약한 마음 보이지 말자.


알았다고, 세 번 연습 다 할게!


패배를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아직 몸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세상 억울해 보인다. 짜증과 화를 꾹꾹 참아내려는 몸동작이 흡사 브레이크 댄스의 일부분처럼 보인다. 또는 고장 난 로봇의 최후의 몸부림 같기도 하고.


이렇게 핵전쟁은 막아냈다. 궁금하실 독자를 위해 이제 설거지 대첩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넘어가겠다.



그날도 똑같았다. 아들은 아침에 수영 연습을 갔다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눈만 또르르 굴리며, 같이 옆으로 누워있는 노트북 화면의 게임 관련 유튜브 비디오를 감상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라 그러면 조금 있다가 한단다. 밥을 먹으래도 "잠깐만"이라는 통보를 보내고는 감감무소식이다. 그래도 너그러이 참아본다.


수영 연습 양이 많으니, 그래 쉬어야지. 샤워는 뭐, 조금 있다 하면 되지. 방학 거의 다 끝나 가는데, 또 언제 저러고 있겠냐 그냥 놔두자. 그래 즐겨라.


오전을 그렇게 보내고, 밥을 먹고는 오후도 별 다를 바 없다.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로 게임과 미디어에 임할 뿐이다.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통화하며 제한된 시간의 게임을 즐긴다. 타이머가 시간을 다 됐음을 알리면 "잠깐만요"는 자동 연발이다. 겨우 자기의 게임을 끝내면 이제 친구들의 게임을 구경한다. 이미 오늘 쓸 수 있는 본인의 게임 시간은 다 썼으니까.


잠깐만요, 를 들으면 그 순간 내 컨디션에 따라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어떤 날은 '시간 다 됐지. 잠 깐 만이면 얼마나 잠깐 인지 보자. 몇 분이나 더하는지 보자. 네가 시간 지키는 거에 따라 내일 게임 시간이 좌지우지되지. 제발 좀 기억하라고' 마음속으로 이를 갈며 진짜 잠깐인지 보자고 팔을 걷어붙인다. 스톱워치를 켠다. 초를 100분의 하나씩 까지 눈으로 따라간다. 단호한 행동과는 대조되지만, 이 이야기는 꼭 마음속으로만 해야 한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한다고 아들이 미치려고 한다. 네가 안 지키니까 그렇지!


아들의 그 반응을 보면 양가감정이 든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와 내 고등학생시절이 보내는 격한 공감. 내가 딱 고등학교 때 저랬는데. 엄마는 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할까, 제발 한 번만 말해도 안다고! 를 엄마한테 자주 토해냈다. 나는 정말 한말 계속 반복하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수없이 다짐했다.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가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자식이 한번 말한 이야기를 따박따박 들었으면, 잘 지켰으면 엄마는 그렇게 반복할 필요가 없었다. 미안해요, 엄마.


다시 내 반응으로 돌아와서, 다른 날은 '그래 아직 중학생인데, 숙제 많은 학교 다니느라 고생하는데 숙제라도 알아서 잘하고 성적 잘 받아오는 게 어디야. 믿고 맡겨보자. 방학 때 이렇게 많이 놀고 푹 쉬다 보면 학교 다닐 에너지가 잘 충전되고 있을 거야. 사춘기잖아. 그냥 내버려 두자. 아침에 수영도 잘하고 왔고 게임 몇 분 더하면 어때.'


그날의 시발점은 바이올린 선생님의 20분 추가 연습 요구였다. 낮에 바이올린 레슨 마칠 때, 연습이 잘 안 되어 있으니 레슨 끝나고 "바로" 20분 더 연습하고 나서, 놀던지 쉬던지 하라고 했다. 선생님이 나가고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기분 좋을 때, "지금 바로 하고 놀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조금만 있다가 할 게라 그런다.


아 그놈의 '조금만 있다가', 또 나왔다. 그런데도 간만에 좋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일단은 참는다. 그리곤 머릿속 회로를 돌려본다. 이번에도 그냥 맡겨야 하나? 그런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한번 뒤엎을 때가 됐나… 고민하는데 깊은 답답함이 올라온다. 나도 이제 더 이상 마음에 여유가 없다.


“이제 3시밖에 안 됐으니 20분 연습이야 밤에 자기 전에 하기는 하겠지. 그런데 7시에 수요예배 갈 거고, 돌아오면 거의 9시 다 된다. 그럼 7시에 나가기 전에 당연히 하고 가야지.” 요즘 전운이 계속 돌았기 때문에 나도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아들은 3시부터 다시 유튜브에서 헤엄치며 정신을 못 차린다. “벌써 5시네, 두 시간 있다가 나가야 한다.” 다시 아들한테 말한다. “아들! 나가기 전에 하자. 오늘 수요예배 갈 거잖아.


수요예배를 참석하면 게임 시간을 한 시간 더 주는 법이 우리 집에는 있다. 예외조항이다. 게임 시간을 주어서라도 자발적 (?)으로 예배를 같이 드리고 싶어서 이다. 그래서 그 한 시간 추가 게임은 아까 레슨전에 진작 다 썼다. 예배드리고 오면 거의 바로 자야 하니까 그 핑계로 미리 끌어다 쓴 것이다. 아들을 귀여워하며 당겨 쓰는 걸 허락해 준건 나였다.


'나중에'라고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시간을 딱 정해서 알람까지 해 놓으라고 했다. 손가락 까딱 안 해도 알람 설정하고, 전화할 수 있게 아들방에는 ‘에코’를 마련해 주었다. 그럼 어려울게 무엇이 있나 그냥 마음으로 시간 결정한 후 에코 불러서 알람 만들라고 말만 하면 되는데. 아들은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알람 설정을 거부한다. 고분고분 시간을 정하고 알람을 바로 명령할 때도 있다. 70% 정도는 그렇게 해왔는데, 오늘은 그 날이 아닌가보다.


"몇 시 몇 분"에 연습할지 정하라고, 아니면 네가 계속 까먹고 지날 때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아들은 수요예배 갔다 와서 20분 연습하고, 늦지 않게 바로 자겠단다.. 부글부글 했지만 심호흡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오늘은 효과가 별로 없나 보다. 참다 참다 폭발했다.


"그놈의 20분, 나가기 전에 하고 가면 갔다 와서 바로 잘 수 있잖아. 내일 새벽에도 수영 연습 가야 하고, 아까 선생님이 "바로" 하라 그랬다고!"

"선생님이 "바로"하라고 그런 건 아니라고, 갔다 와서 한다니까. 갔다 와서 해도 9시 20분에 잘 수 있다니까. 왜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못써?"

"네가 여태까지 한다 그러고 안 한 적이 많으니까. 한 적도 있지만 안 한 적도 많잖아? 양심에 손을 얹고 돌아봐. 너 7시에 나가기 전에 안하면 내일 하루좋일 핸드폰 못써!“


"엄마는 왜 맨날 핸드폰 가지고 뭐 라그래? 내가 바이올린 연습하는 거랑 핸드폰이 무슨 상관이야?"

"내 친구 중에 하루 종일 게임하는 얘도 있다고!!!! 왜 내 시간을 엄마가 다 통제하려고 해?"


"그래서 네가 방학때 한 게 뭐가 있어? 엄마가 많은 거 바랬어? 수영연습 갔다 와서 바이올린 연습하고 나면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통화해도 뭐라 안 해, 게임도 하루에 두세 시간은 넘게 했어. 나머지 시간은 하루 종일 유튜브 봐도 놔뒀어.


그런데 계속 바이올린 연습 미루고 제대로 안 하는 날이 더 많았고, 결국 방학 두 달 끝나가는데 선생님이 몇 주째 연습 안 되어있다고 했잖아! 지난주에 심각하게 얘기했는데도 오늘 연습이 3점이래. 10점 만점에 3점! 말이 되냐고!!!!!


그래 그리고 너 어제 엄마랑 설거지 잔뜩 쌓인 거 같이 하기로 했지? 했어 안 했어?”


나도 안 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결국 오늘 내가 다 처리해 버렸다. 아들 교육시키겠다고 같이 할 수 있는 시간 맞춰서 하려니까 집이 너무 지저분해서 견디지 못하고 내가 다 해버린 거였다.


딸은 평소에 이것저것 잔 심부름도 많이 하고, 내가 밥때 집을 비울 때면 동생 밥도 잘 챙겨준다. 그런 걸 떠올리고 아들은 하루 종일 유튜브나 게임 밖에는 너무 하는 게 없는 거 같아서 어제 같이 하기로 약속했던 거다. 식기세척기에 아들이 차곡차곡 넣으면 나는 옆에서 다른 것들 치우기로.


아무튼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게 기억이 났다. 아, 승리가 눈앞이다.

"너 어제 잔뜩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들 같이 치우기로 했어 안 했어? 그래서 했어? 했냐고??????

방학 때 엄마가 책 좀 읽었으면 좋겠다 말했지만 억지로 시켰어? 네가 안 하겠다면 그냥 두었잖아? 그리고 바이올린은 하기로 한 거니까 연습 까먹지 않게 리마인드 하면, 자기가 알아서 하는데 말한다고 짜증 내고. 그렇게 두 달을 줬는데 선생님은 연습 요즘 전혀 안 되어있다고 말하잖아!


방학 때, 네가 엄마 밥 "먹어준 것" 빼고 한 게 뭐가 있냐고? 어쩌다 설거지하기로 한 것도 안 하고. 자기 밥 먹은 것도 안 하고 뭐가 있냐고. 네가 방학 때 뭘 했어!!!!!!!!!"


아들은 눈물 뚝뚝 흘리고 씩씩대며, 또 새끼 잃은 어느 동물처럼 서럽게 운다. 바이올린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을 진작에 반복해 왔으니까 설거지로 계속 공격한다.


" 엄마는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집안일만 하는 사람이야? 엄마가 항상 그걸 다 해야 해? 아빠는 우리 집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서 엄마가 다 해주지만 앞으로 너는 네가 먹은 거 바로 설거지 깨끗이 해." 대공포 미사일이 투하됐다.


그동안은 먹은 것 개수대에만 넣고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룰이 너무 느슨해 선지, 먹고 나면 식탁에 그냥 두고 가는 경우가 점점 늘었다. 양이 너무 많았다며 자기가 조금 있다 와서 배고프면 먹겠다는 이유였다. 내가 정성스럽게 한 음식이 버려지는 게 아까워서 그걸 허락했다. 그런 예외가 생기면서 그 법은 더 이상 잘 지켜지지 않았었다. 그릇이 깨끗이 비워졌을 때조차도 빈 그릇을 그냥 두고 맛난 음식을 옮겨 담은 자기 몸만 데려갔다.


마지막 쐬기 포를 박는다. "지금부터 네가 먹고 난 그릇은 네가 깨끗이 설거지하고 들어가 항상. 예외 없어. 안 지켜지는 거 세 번 보면 핸드폰 하루 못써."

그날 그렇게 선전포고 후, 미사일이 서로 오갔고 일단은 엄마국의 대공포 미사일로 잠시의 승리를 가져간 듯 보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설거지 대첩의 효과가 엄청났다. 아들은 매 끼니 밥을 먹고 난 후에 밥그릇, 국그릇, 컵을 싱크로 가져가는 걸 잊은 적이 없다. 그뿐인가, 정말 놀라운 일은 수세미를 들고 진짜로 설거지를 하고 가는 게 아니겠는가. 그간 미리 열 번을 알려주어도 항상 깜빡하는 아들을 행적을 보았을 때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진짜로 감동해서 몇 번이고 칭찬했다. 칭찬도 똑같은 걸로 계속 칭찬하면 별로라고 들은 거 같긴 한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칭찬을 뱉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 엄마랑 약속한 거 잘 지켜줘서 고마워" 하루 이틀 삼일로 끝난 게 아니라 지금까지 열흘을 지켰 왔다.


그러면서 우리 아들 교육에 대해 좀 더 느낌이 왔다. 방학 두 달 동안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맡겨둠이 배신으로 끝나감을 보고 실천 방안을 수정했다. 그 후 거둔 이런 승리를 통해, 우리 아들한테 맞는 교육법은 어떤 것인지 감이 좀 오기 시작했다. 모든 아이들에게 통하는 건 아니겠지만, 충격 요법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어쩌면 바이올린이나, 공부에 대한 요구가 아닌 기본 생활에 대한 것이어서 아들도 더 잘 지키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랬다. 내가 아들이랑 바이올린 "연습" 때문에 계속 트러블이 생기는 거 보고 남편이 말했었다. 그럼 그냥 바이올린 그만두게 해. 제대로 안 하면. 내 생각도 그랬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만두라고 얘기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그만 두길 싫어했다. 연습을 열심히 안 할 때면 지속할 의미가 없으니 그만두라고 했다. 그러면 아들은 도리어 화를 냈다. 그만두라는 이야기 그만하라고. 진짜 어이가 없다. 그럼 열심히 하라고. 열심히 안 할 거면 그만두라고.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느낌이다.


사실 바이올린 때문에 아들이랑 부딪히는 현상을 분석해 봤다. 나는 아들이 바이올린을 잘했으면 하는 마음보다, 본인이 선택했으니 적어도 주어진 것에는 "최선"을 다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진심으로. 남편한테도 그걸 이야기했으나 결국 바이올린 때문에 싸우니, 우리가 싸울 때마다 그냥 그만두게 해라는 말을 한다. 아, 그게 아니래도.


아들이 지금 본인이 챙겨서 진지하게 하는 수영팀과 대회도 이년 전에는, 지금의 바이올린 대하듯이, 동네 지나가는 개 보듯 한 적도 있었다. 수영 대회 등록 한날에 생일 초대를 받으면, 미리 낸 대회비 다 버리고 그냥 파티에 갔다. 그걸 기쁘게 허락해 줬다. 무슨 초등학생이 목숨 걸고 수영할 것도 아니고, 놀 수 있을 때 놀아야 하니까.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진짜 필요할 때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잘 설득해서 손 잡고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부분은 통했다. 이 년 사이 자기가 성장하는 걸 깨닫고, 친구들이랑 선의의 경쟁도 하고 본인 기록이랑 싸움도 해왔다. 이제는 수영 대회가 있으면 본인이 컨디션 조절을 한다. 예전처럼 등록해 놓은 수영대회를 "놀기 위해" 빠지는 건 본인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자유를 주어서 직접 선택하게 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스스로 잘 이루어 가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


난 바이올린도 그렇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 순간이 올 것 같은데,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본인이 먼저 챙겨서 연습하지 않는 게 속상할 뿐이다.




열흘 전 설거지 대첩보다 훨씬 더 큰 전쟁이다. 논리를 이길 수 없는 아들이 백기를 들었다. 바이올린 연습을미리 더 하는 조건으로 여행 가기로 하고는, 가짜 평화가 찾아왔다. 서로 마음 다해 동의하지 못했지만, 일단 조용해지고 기본 조약이 합의된 상태다. 전쟁보다는 낫지만, 이 고요가 껄끄럽다.


방문 닫고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바이올린 연습을 하던 아들이 물을 먹으러 나왔나 보다. 그리고는 곧 달그락 그릇 씻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 저녁먹은 후 깜빡하고 설거지를 안하고 갔던데, 그걸 처리하고 있나보다. 그 물소리와 접시를 들고 요리조리 손으로 돌려가는 씻는 모양에 전혀 모가 나지 않았다. 소리는 차분했으며 어떤 신경질 적인 손놀림은 일도 없었다. 밥그릇 국그릇 수저 컵 어느 반찬 그릇까지 씻는 모양이다.


놀라운 일이다.
지난 열흘 동안 보여주었던 모습보다 더 감동적이다.


아들은 원래 저렇게 화가 나면 금방 안 푼다. 보통 저녁때 나랑 국지전을 하고 난 날은 굿 나이트 허그도 없고 어글은 상상도 못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났을 때 굿모닝 허그도 없다. 어떻게 자고 일어났는데도 그걸 안 까먹고 아침부터 저렇게 무게를 잡으려고 하는지 의문일 뿐이었다. 그럴 땐 내 아들이 아닌 것 같았다.


둥글둥글한 둘째가 한번 화나면 금방 식지 않았다. 이런면에서는 첫째랑 정 반대이다. 그리고 각기 같은 그런 어설픈 로봇 춤추는 듯, 몸에 화가 잔뜩 쌓였을 그런 때는 금방 화를 풀지 않는 아이였다. 바이올린 중간중간에 쉬면서 한숨 푹 푹 내쉬는 소리, 보면대 거칠게 옮기는 소리, 악보를 탁탁 던지는 소리가 들렸었다.

그런데 물을 마시고, 물 마시는 것처럼 아무 감정 없이 자연스럽게 본인이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한다. 그걸 인지하고는 내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우와, 심하게 화났는데도 저렇게 설거지를 한다고? 벌써 그렇게 습관이 된 거야? 대박. 이건 진짜 칭찬해 줘야 할거 같은데... 나는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 지금은 아니다.


딸한테 상담 요청을 했다. 방금 벌어진 아들이랑의 전쟁은 충분히 구경했고 우리 히스토리를 세상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아이라, 상담을 받으면 꽤 많이 도움이 될 듯했다. 어둑한 침대에 누워 딸한테 상담을 했다. 딸은 남자 사람 친구도 좀 있어서 그 또래 남자아이들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다. 한 세션 충분히 말하고 듣고 끝내니 나는 이미 충만해졌다. 이제 아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을 조금은 잡은 듯했다. 물론 또 바뀌어 가겠지. 그럼 나도 배우고 또 따라 변화하면 된다.


누나랑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보니 아들은 그냥 지나지는 못하겠나 보다. 평소처럼 자기도 끼고 싶은데, 아까 그 난리를 치고는 민망하겠지. 평소에 자주 하듯이 우리 둘 사이를 파고들 수 없지만 우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온다. 별거 아닌 질문을 던진다. 바이올린이 끝났다고, 이제 자기가 뭐 더 해야 할 건 없냐고. 아직 그 목소리에서는 아까의 그 분노가 운동복에 젖은 땀처럼 흥건히 남아있다.


전쟁 중에 적국의 경쟁국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서 그걸 자랑하듯이 자극하면 안 된다. 전쟁 윤리이기도 하고, 경험상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등을 치기도 하더라. 그래서 아들에게 여행 짐을 미리 싸라고 건조하게 대답을 하고는 딸을 급하게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방으로 돌아가는 아들을 잡고 한마디 던졌다.


"어글?"


부부싸움 후에 찐한 애정행위를 하고는, 칼로 물 베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느낌이 이런 걸까? 아들한테 좀 민망했지만, 딸한테 상담하면서 얻은 아이디어와 아까 아들한테 거두었던 승리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하니까, 아들도 위로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여과 없이 나간 내 제안에 아들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좀 곤란하다는 표정을 비친다. 동시에 내가 어쩌면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시그널도 보내고 있다.


"I guess?"


아들이 허락하지 마자 아들 방으로 따라 들어가서 성장 마사지 해줄까 물었다. ㅋㅋㅋㅋ 동시에 둘이 빵 터졌다. 그만한 큰 전투를 치르고 이렇게 빨리 화해하게 될 줄 몰랐다. 경쟁국인줄로만 알았던 누나국의 도움이 큰 듯하다.


발바닥, 발목, 무릎을 마사지하면서, 소리 심하게 지르며 이야기한 거 미안하다고 내가 먼저 사과했다. 아들도 사과를 한다. 관계는 거울이다. 누굴 욕하기 전에 나는 그 사람한테 어떻게 했었나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아까 아들이랑 한바탕 하고 나서 남편하고 ‘아들 폰을 없애야 하겠다‘고 진지하게 얘기도 했었다. 핸드폰을 너무 빨리 사준 걸 떠올리며 중학교 졸업 때까지는 사주지 말아야 했더고 후회했다. 그리고 아까 여행 허락을 받아 내고도 한참 짜증 내길래, 여행 도중에 핸드폰 사용을 두고도 협박했었다. 그런데 설거지를 보면서 깨끗이 마음 정했다. 기꺼이, 핸드폰은 들고 가게 해주겠다고. 설거지를 잘해서, 약속을 잘 지켜주어 주는 상이라고.


설거지처럼 바이올린 연습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바이올린은 지금 그만둬도 된다. 사실 수영이랑 오케스트라를 같이 하는 게 벅차기도 했다. 아직은 괜찮지만 결국 고등학교 가면서는 수영이나 바이올린 둘 다 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는 걸 인지해오고 있었다.


내가 오늘 벌인 전쟁의 원인 은 "바이올린"을 잘하냐 못하냐가 아니었다. 바이올린을 본인이 선택한 후에 "제대로" 연습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였다. 이건 학교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아들이 선택한 어떤 또는 모든 것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을 문제다.


설거지 충격 요법 후에 저렇게 제대로 하는 걸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잘할 때 계속 칭찬해서 그걸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계속 심어줄 거다.


성장마자시를 충분히 받으면서, 언제 나리였냐는 듯 금방 우리 막내로 돌아온다. 이제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라 하루에 다섯 살과 열여덟 살 사이의 행동을, 극과 극으로 골고루 보여준다. 신이 나서 지난주에 미션트립 가서 좋았던 걸 자세히 이야기 준다. 행복하다. 세 시간 전에 전쟁 치르고 뭐 하는 짓인가 하겠지만, 우리가 아들로 엄마로 성장하는 좀 별난 모습이다.


이렇게 아들과 엄마, 우리는 오늘도 조금씩 자라난다.

아들이 2025년, 6학년 학교 미술시간에 그린 Gr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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