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세’라는 이름의 개가 있었다. 그는 동물의 성격에 관한 나의 관념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주인공으로서 말하자면 내 가슴에 종(種) 불문, 중요 캐릭터로 자리하고 있는데, 그를 생각하면 ‘연관 검색어’로 그의 메인 캐릭터인 ‘뻔뻔함’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헥세의 그 태연한 요구, 수준급의 뻔뻔함을 보면서 ‘넌 참 좋겠다.’하고 개마저 부러워했던 웃기는 과거는 혹 ‘루저’ 같아 보일까.
나는 한때 뻔뻔한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과오에 집착치 않고 별로 부끄러워할 줄도 몰라 행동에 거침이 없어 보였다. 매사에 별로 쿨하고 뻔뻔하지 못했던 나는 뻔뻔함은 타고나야 하는 건가, 하고 타인을 의식 않는 그 거침없는 행동들에 망연자실했더랬다. 뻔뻔함은 확실히 세련된 인간성과는 대치되는지, 아무리 교묘하게 뻔뻔함을 구사해도 그예 드러나 버리며, 심지어 헥세에게 느꼈던 동물적 순수함마저 있었다.
뻔뻔함, 그것은 어쩌면 1억 5천만 년 동안이나 변하지 않았다는 현생인류의 DNA에 각인된 공통된 동물 본연의 속성은 아닐는지. 뻔뻔하게 자기 피알도 잘해야 먹고살고 뻔뻔하게 자기 과오쯤 무시하고 살아야 당당한 세상이고 보면 역시 생존과도 직결된 능력임은 부정할 수 없겠다. 그런 의미에서 본능에 별로 충실하지 못했던 나는 한때 ‘썩소’를 무기로 뻔뻔해지려 노력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헥세를 통해 알게 됐고, 부러워했던 것은 숨길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온전함 그 자체, 그 존재로서의 자신감이며 절대 평가절하 될 수 없는 존재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꿀릴 것 없는 완전함을 저기 내 안쪽에서 찾을 때야 비로소 그 어설펐던 ‘썩소’가 진짜 미소로 바뀐다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생명의 완전함에서 한수 앞선 ‘헥세들’에게 잘난 척 말고 겸손해야 할 이유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