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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Jan 17. 2023

비와 디사이의 씨


오늘 저녁은 잘 차려서 먹을지 그냥 대강 때울지. 아무래도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은데 좀 참아봐야 할지 그까짓 거 있는 것은 다 먹어치울지. 이번 주 모임에 빠진다는 이야기의 적절한 타이밍은 오늘이다 아니다. 기타 학원을 등록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걸리적거리는 길목의 무단주차를 신고할까 말까.


어떤 라디오의 디제이가 우리의 인생은 b와 d사이의 c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 라는 오프닝 멘트를 날렸을 때 정말 맞는 말이야!라고 탄성을 질렀다. 마침 너무도 추운 작업실에 앉아서 오늘은 이만 접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선택의 기로에서 어영부영 한 시간째 고민하고 있던 터였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하루는 선택의 조합이다. 내가 내린 선택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면 나의 영민함에 쾌재를 부르고 불편한 상황을 낳는다면 모자랐던 판단을 곱씹으며 자책한다. 사소한 선택으로 큰 값을 치러야 하거나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어차피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자잘함과 중요함, 선택의 '크기'를 따질 필요는 없다.

선택은 의식 중에 무의식 중에 숨 쉬듯 하며 매번 남에게 선택을 미루는 아무리 우유부단한 인간이라도 계속 사는 한 어쨌든 선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관건은 선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일 텐데, 잘 선택했냐 안했냐의 판단은 이 또한 참 모호한지라 누군가의 입장에서 보면 형편없는 선택도 나의 입장에서는 행복한 일이라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그게 매번 깨끗하게 나의 선택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살짝 걸린다. ‘사실 선택에는 옳은 선택, 나쁜 선택이라는 것이 없고, 다만 책임을 안 지려고 하면 나쁜 선택이고 책임을 지려고 하면 나쁜 게 없다’는 어떤 스님의 현명한 말씀에, 그렇다면 살며시 한 표를 줘본다.


생각하니 참 매력적이다.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면 내게 선택된 모든 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나에게 책임으로써 부여하는 가치. 주체적이고 인간적이고 씩씩하고 당차다. 거기에는 건강한 삶이 느껴진다. 힘이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인간은 심히 부정적이고 또 그렇게 몸을 사리도록 설계돼있다니. 내 선택의 후회나 선택하지 못한 것들의 아쉬움으로 고통받을 때, 떠나간 버스를 금방 잊어버리는 건강한 건망증은 책임에 싣는 힘이 클수록 더 빨리 얻을 것이다. 책임감의 엔진을 최대 동력으로 가동하면 된다. 그러한 의지도 물론, 똑같은 설계도에 들었을 테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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