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총총 땋아 새치름한 붉은빛 리본으로 앙증맞게 마무리한 것 마냥. 제 몸뚱이를 풍성하게 늘어뜨린 익숙한 자태는 볕 좋은 어느 집 베란다의 화분 하나를 만만히 차지하고 있을 게발선인장의 모습이다. 뾰족한 꽃 모양이 게의 발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그 어원도 투박한 데다 구김살 없이 잘 자라는 본성과는 다르게 꽃말이 ‘불타는 사랑’이라니. 소박한 처지와 달리 과한 꽃말이 언뜻 너무 막 같다 붙인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실소했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짙은 초록의 넓적한 잎 중앙에서 뾰족한 잎 끝으로 갈수록 살짝 감도는 오묘한 자줏빛이 꽃으로 전해지면서 마침내 폭발하는 선명한 붉은색은 장미의 우아함에 비길만했다. 아 진짜 게발선인장은 어떻게 이런 색을 가질 수 있었을까. 과연 그 속에 강렬한 사랑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애정을 가지고 보면 살아 있는 것 하나하나 탄성을 자아내기에 마땅하지만 이렇게 그 색깔에 도취될 때면 정말 게발선인장, 너가 ‘갑’인 듯하다.
불타는 사랑. 그래도 나 어릴 땐 심심찮게 먹혔던 레퍼토리 같은데 나 커서는 변변한 전제 없이 사랑도 불살라지지 않는 시대가 되어 이런 게 별로 가당한 말은 아닌 듯하다. ‘썸남썸녀’라는 말이 있다. 서로 호감은 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선뜻 연애의 불을 댕기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을 말한단다. 추세 속에서 나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이상한 신조어로 드는 안도에 좀 씁쓸해진다.
뭐 비단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뭘 하든 너무 시큰둥하고 미지근한 생각이 들어 이건 좀 아닌데. 할 때가 종종 있다. 어떤 대상에도 애정이 잘 불살라지지 않는 열정 결핍증 같은 거랄까. 무언가를 애타게 원해서 불사른 후에 남을 허무한 재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가슴에 게발선인장 꽃빛 같은 열정을 품었던 어느 한 때가 진하게 그립고 마음껏 갈구하지 못하는 지금의 몸 사림이 싫다.
불타는 사랑과 열정은 용기와 동의어가 분명한 듯하다. 오므리고 있다가도 때가 되면 나보라는 듯 한껏 꽃잎을 까뒤집고 만개하는 게발선인장의 꽃처럼 지나친 방어 말고 우리들은 자신을 좀 쫙 펴고 또 그걸 있는 그대로 봐주고 그랬으면 좋겠다. 비록 찰나일지라도 만개했던 기억은 그 빛깔 온전히 곳곳에 봉우리 져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