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챌린지 <스토리 헌터, 당신의 이야기를 삽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하지 않으면 쉴 수 있지만, 안 한다고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 하면 아까워서 속이 아프다. 그래서 기어이 신청하고야 만다. 일, 강의, 과목별 ZOOM 라이브 강의, 학과 동아리 소설방과 시방…. 읽고 쓰는 것이라면 자꾸만 욕심이 생겨서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정말 시간이 알뜰하게 간다. 물론 전부 다 안 해도 된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안 한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고 싶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내게 다시 주어지지 않을 시간일지도 모르니. 그래서 감당할 수 있는 한, 다 감당하고 싶다. 이번엔 그냥 하지 말까. 너무 힘든데. 시간도 없잖아. 머뭇대고 갈등하지만, 한다고 저지르면 분명 열심히 하고 있을 나를 믿고 또 손을 들어 본다.
지난 13일 일요일. <스토리 헌터, 당신의 이야기를 삽니다> 스토리텔링 챌린지 특강이 있었다. 현직 작가님 세 분에게 내가 구상한 스토리를 피칭하는 것. 총 열 명의 학우들이 신청했다. 나는 특강이 있기 일주일 전에 마지막으로 손을 들었고, 새로운 스토리를 구상할 시간이 없었기에 다른 과목 과제로 제출한 웹소설로 급하게 PPT 자료를 만들었다. 너무 뻔하고 흔해서 자료를 제출하고 났더니 현타가 왔다. 그러면서도 특강이 기다려졌다. 그러다가도 아 괜히 했나 싶었다. 그래도 가장 강력한 감정은 설렘이었다.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것인지 방학 기간 소설과 에세이 반 특강에 참여하면서 알아버렸다. 쓴소리도 달달한 게 피드백이었다.
일요일 낮 1시, 특강이 시작됐다. 나는 열 명 중 아홉 번째였다. 앞선 학우님들의 피칭을 보고 작가님의 피드백을 들으면서 나는 어떻게 피칭할지 수시로 업데이트했다. 열 개의 각기 다른 스토리도 재밌었지만 아무래도 디자이너라 학우들이 만든 PPT에도 눈이 갔다. 다들 언제 이렇게 준비한 건지 조금 속은 기분도 들었다.
드디어 내 차례. 1시부터 시작된 특강은 5시를 앞두고 있었다. 발표자인 나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진행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힘들까 봐 걱정됐다. 내 뒤에도 한 사람이 더 있었기에 빨리 끝내야지 싶었다. 일단 재밌게 하자. 자신 있게 시작했다. 그런데 마음이 급해져서 자꾸 발음이 씹히고 꼬였다. 따흑.
“반갑습니다. 좋으니, 싫으니, 좋으니입니다. 저는 오늘 피칭을 위해 스티브 잡스 룩 - 실제로 검정 목폴라를 입었다 - 을 입었습니다.”
10분간 피칭이 진행됐다.
“제 이야기 어떠셨나요. 바로 지금이 살 때입니다. 지금이 가장 쌀 때니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Ctrl+Z를 누르고 싶었다. 아, 아쉬워.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작가님 세 분의 피드백을 듣고 어쩔 줄 모르겠는 행복감이 식탐처럼 밀려왔다. 세종사이버대 와서 너무나 과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늦은 밤, 피곤한 줄도 모르고 녹화해 둔 영상을 돌려보며 작가님들의 피드백을 타이핑했다.
사이버대 다 똑같지 뭐.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시니컬하게 입학해서 이런 행복을 누릴 줄이야. 아찔하도록 감사할 뿐이다. 글쓰기가 이렇게 좋은데, 에세이도 소설도 시도 이제 장르 가리지 않고 다 쓰고 싶은데. 편입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이 좋은 걸 모르고 살 뻔했으니 정말이지 아찔하기만 하다. 아직 못 들은 과목이 너무 많은데. 졸업하기 싫다. 어쩌나 저쩌나.
<피드백 일부입니다>
박진아 교수님 : 아 정말, 스티브 으니 오늘 정말 한 건 하셨네요.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가 분명한데 왜 계속 재밌지?라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제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세 분 작가님께서 답을 찾아주실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강현 작가님 : 피칭 너무 잘 들었고, 아마 이 피칭자의 매력 때문인 것 같아요. 이런 아이템을 보면 어, 대본을 봐야겠는데요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아요. 전체적인 피칭을 봤을 때는 당장 프로듀서 앞에서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하시고…. 다만 로코기 때문에 대본에 대한 기대치가 좀 높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재밌는 것처럼 대본 1, 2부도 재밌게 뽑아주시면 베스트일 작품이어서 저는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임태운 작가님 : 아, 일단 너무 재밌게 잘 들었고요. 어떤 점이 좋았냐면 발표에 집중하다 보면 내용을 더 파악하려고 서류를 보게 되는데 이번 작가님이 발표할 때는 거의 보지 않았어요. 저는 화면을 보고 작가님이 해준 설명대로 따라갔어요. 그래도 내용이 다 이해되겠다는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그건 단순히 그냥 피칭을 잘하는 것을 넘어서서 내 작품에서 사람들이 어떤 점을 재미로 느낄 것인지에 대한 촉이 살아있는 거죠. 그리고 그걸 어떻게 좀 더 재밌게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노다지 노다지 buy U~ 이런 것도 하고. 살 때 쌀 때 이런 얘기도 하고. 고민의 결과물이라는 거죠. 그냥 뚝뚝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이 이야기와 별개로 저는 오늘 이 기획안을 읽었지만, 이 작가의 다른 기획들도 궁금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쓰게 될 작품들도 스스로 한계를 지우지 말고 여러 개를 써보면 좋겠어요. 오늘 피칭 잘 준비해 주셔서 꼭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감동받았어요.
주원규 작가님 : 야, 피칭으로는 이런 피칭은 저는 처음 봤고 정말 마지막 화면에서 지금 살 때다, 진짜 사고 싶네요. 진짜. 아주 잘 봤습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텐션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캐릭터 구도를 가지는 것 같아요. 캐릭터가 뻔한 느낌의 긴장 관계일 수 있는데 셋이 엮여 들어가면서 성장할 수 있겠다는 텀이 보인다는 구도? 하지만 이게 너무 레드오션이라서 좋으니 작가님의 장점이 어필되기도 전에 그냥 이거 뻔한 로맨스네 하고 덮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서 다른 텐션을 올릴 수 있는 캐릭터들을 조금 더 구상하셔서 이런 기획안을 몇 개 더 만들어보시고 스스로 점검하면 좋겠어요. 너무 잘 봤어요.
매거진 <싸대기>는 세종Cyber대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우고 쓰면서 만난 설렘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기록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