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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Nov 18. 2022

자꾸 생각나는 술주정

문보영 시집 『책기둥』(민음사, 2017)을 읽고

 


오랜만에 친구랑 약속이 있었다. 만나기로 한 친구가 자기 친구를 데리고 왔다. 동네 호프집에 셋이 밀접하고 둥그렇게 앉아 술을 마셨다. 평평하지 못한 바닥에 세워진 동그란 스뎅 테이블. 그 위에 소주병 세 병이 청량하게 세워져 있었다. 알딸딸한 김에 친구의 친구에게 처음으로 문장으로 된 말을 내뱉었다. “초면에 이런 말 죄송하지만, 아까부터 무슨 말씀 하시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문보영 시집을 반 정도 읽었을 때 꼭 술주정 같네, 라고 생각했다. 나쁜 의미는 아니다. 유쾌하고 기발했는데 대부분은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꼭 의미는 어디론가 빠지고 뉘앙스만 가득 풍기는 글 같았달까.      


“콘페니우르겐의 임신 기간은 사십 년으로 지구에서 가장 길다 그런데 콘페니우르겐의 평균 수명이 이십칠 년인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다.”     


책의 첫 페이지에 쓰인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너무 궁금해서 콘페니우르겐을 검색했는데 정보가 없었다. 뭐야, 처음부터 이런다고? 싶었지만 수수께기를 받아든 이상 이 물음표를 어떻게든 반듯하게 세워보고 싶었다. 『책기둥』을 한마디로 스포하자면 인터넷으로도 검색되지 않는 시인의 말에 있다. 하나의 수수께끼.


꽉 닫힌 해피엔딩, 선명한 결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시인의 언어와 문단의 배열을 받아들이는 데 난관이 있었다. 바닥에 잔뜩 쏟아 놓은 1000 피스 퍼즐처럼 의미를 찾기도 꿰맞추기도 힘들었다. 실수로 엔터 친 것 같은 띄어쓰기는 정말이지 오류 같아서 문단 정리를 하고 싶었다. 시인은 왜 이런 방법으로 띄어쓰기를 한 거지. 여기에도 숨은 의미가 있는 걸까. 시인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천천히 곱씹어봤지만, 그 찰나에도 수많은 의미가 휙휙 지나가 버려서 쉽지 않았다. 굳이 해석하지 말라는 배움을 성실하게 받아들이고 그냥 시인이 그려놓은 이미지를 감상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화가가 그려놓은 작품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시인이 그린 작품 앞에서 나 같은 관람객을 만난다면 폴 고갱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의 색은 모두 우리의 고정관념입니다. 바다는 파란색, 나무는 갈색, 누가 이게 정답이라고 정한 거죠? 화가는 자신이 느끼는 색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되는 겁니다.” 우리 삶과 전혀 동떨어지지 않는 바다와 나무를 등장시키면서도 시인이 느끼는 색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시. 문보영의 시가 그랬다.


문보영 시를 읽다 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거나 유사하게 연결된 텍스트들이 발견되는데 생각나는 것들만 적어보자면 이렇다. 앙뚜안, 지말, 스트라인스, 여름, 비둘기 등. 마치 코바늘 사슬뜨기처럼 왼손 검지에 걸어둔 실을 코바늘로 다시 당겨와 고리 안으로 집어넣듯 시인의 말이 커다란 고리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듯했다. 내일(來日)처럼 가까우면서도 예상되지 않는 시인의 언어는 분명 유쾌하고 기발했지만 혼자 유쾌한 듯해서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내는 책을 탁, 덮는다 방금 누군가 나를 포기했다’(「정체성」)는 시구처럼 독자에게 끌려가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끌어당기고 마는 시크함에 나 역시 불편한 마음을 탁, 덮었다. 그리고 파헤치려는 나를 포기했다.


문보영 시에서 인상 깊었던 시는 ‘다음과 같다’(「역사와 전쟁」). 「지나가는 개가 먹은 두 귀가 본 것」, 「호신」, 「얼굴 큰 사람」, 「뇌와 나」, 「역사와 신의 손」, 「삼각형 외부의 점」, 「모기와 함께 쓰는 시」, 「정체성」 등이다.

불친절한 안내자긴 했지만, 시인이 주워다 모은 기이한 발견은 감상하는 이의 시간을 알뜰하게 유혹했다. 아무리 이게 뭐야 라고 툴툴거려봐도 시인의 기발함이 재밌는 건 재밌는 거였다. 나는 지금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것 같으니라고.’ 혀를 차며 문보영이 썩 내키지 않는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색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시인의 세계를 걸어 본 소감은 다시 가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너를 화나게 하고 싶다’(「복도가 준비한 것)」는 시인의 도전에 맞서고 싶은 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참, 저는 안마십니다. 서두의 이야기는 술주정같다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지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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