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문학동네, 2021)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고 맥락 문화 속에 살아도 시를 찰떡같이 알아 듣기란 언제나 어렵다. 시인과 독자 사이엔 항상 시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현승 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은 일상적인 언어와 장면 포착으로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건드리기에 평소 시가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라도 쉽게 읽힐 시집이다. “비로소 어떤 시차가 밀려왔다”(「시인의 죽음2」)는 시의 구절을 빌려 시차라고 표현했지만 시인도 책머리에 써두었다. “조금씩 어긋나는 대화가 좋다. 다 이해할 수 없어서 존중하게 되니까”라고.
읽기 전부터 이 시집의 “이름에 담긴 뜻을 생각해”(「심봉사 팥도너츠」)봤다. 뚜렷하게 그려지는 이미지는 없었지만 어떤 텍스트로 한 방 묵직하게 날릴지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대답이고 부탁인 말』이 안녕이었을 때 “딱히 무엇과 싸우지도 않았는데 이미 패배한 자의 발걸음으로 귀가”(「자서전엔 있지만 일상엔 없는 인생」)하는 것마냥 허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흔하면서 의미와는 멀어져 있는 언어를 선택하여 나와 타인을 우리로 연결시킨 순간, 안녕은 더 이상 버려지는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만나면 안녕? 하고 묻고
헤어질 땐 안녕, 하고 말해요.
질문이고 대답이고 부탁인 말이 안녕이에요.
엄마가 제 소원을 묻는다면 저는 부탁하고 싶어요.
안녕해주세요. 안녕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안녕이 되고 싶어요.
―「생일 소원」 부분
사망하지도 않은 할리우드의 악동 “린지 로언의 사망 기사를”(「살인광 시대」) 써놓고 그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회,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열정으로 살아 있는 다섯 시”(「가로등 끄는 사람」)를 살아내야 하는 사회, “죽을힘으로 뛰었으나 눈앞에서 전철을 놓”(「사물의 깊이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쳐야 하는 불평등을 겪어야 하는 사회, “진정으로 포기를 모르는 것은 실패”(「죄인」)인 사회를 살아가는 타자를 향해, 시인은 “할 수 있었지만 하지 못한 것, 그건 안 한 것이기도 했다”(「자각 증상」)라는 말 대신 안녕해달라고 말한다.
그는 짧고 간결한 방법으로 말한다.
누구나 필요한 만큼의 말을 할 뿐인데
다른 게 있다면 필요의 크기랄까.
하긴 이미 배고프고 사랑하고 떠나고 싶은 사람에겐
말이 필요가 없다.
―「지나친 사람2」 부분
무소식은 무소식 안녕을 묻자
시인의 말처럼 “낫 굿 낫 뱃,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삶”이다. 너도 나도 힘드니 모두 힘내자는 말은 힘이 없다. 위로 본연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은 오히려 위로가 비켜난 순간에 드러난다.
깊은 외로움과 생의 고통 가운데 있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물어야 한다. 만나고 헤어질 때 하는 인사이던, 무탈하고 편안하길 바라는 안부이던,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바라는 염원이던,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최소한 인간이 필요하”(「호모 사케르」)기에 시인은 가볍게 흘려버려지는 ‘안녕’이라는 단어를 포착해 나와 타인의 외로움을 마주 보게 한다. “떨어지기 시작한 꽃의 뒷모습에서 제 청춘을 보는 사람”(「꽃 시절」)처럼 마주 본 당신에게 안녕을 대답하고 안녕을 부탁한다.
얼마나 힘센 속도로 봄은 오는가.
저 작은 눈 속에 저렇게 큰 잎이 다 접혀 있었던 걸 보면
봄은, 터질 수밖에 없을 때 터진 거다.
매번 하는 일인데,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중요한 일」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