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다. 추우니 따뜻해지고 싶다는 고수리 작가님의 글이 생각나는 날이다. 회사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지지만, 책상 아래 다리는 더 따뜻해지고 싶다. 무릎담요를 덮어도 발과 발목은 여전히 차다. 이르긴 하지만 이제 온열기를 꺼내야 하나. 추우니 두드러기도 자주 올라온다. 날이 춥거나 온도가 급격히 변하면 두드러기가 올라오는데 간지럽기도 하고 쿡쿡 쑤시기도 하는 두드러기에 계절의 오고감을 느낀다.
정오를 앞두고 내가 속한 단톡방에서 가을 소풍 이벤트 공지가 올라왔다. 가을과 소풍이라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벌써 10월이야, 벌써 가을이야 하는 마음에 무력한 기분이었는데 가을에 소풍을 입히니 햇빛에 바싹 말린 고구마말랭이처럼 당당(SugarSugar)해지는 기분이었다.
소풍. 정말 오랜만에 듣는 단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니 이젠 소풍보단 여행, 나들이, 야유회라는 단어와 익숙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하나둘 생긴다. 그래선지 오랜만에 듣는 단어에 그때 그 시절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소풍. 발음도 귀여운 소풍. 눈으로 봐도 오밀조밀한 소풍. 왠지 마음이 붕 뜨는 것만 같은 소풍.
초등학교 소풍 전날 엄마가 슈퍼에 가면 무슨 과자를 사 오실까 설레었다. 슈퍼에서 돌아온 엄마가 쌍둥이 동생과 내 것까지 세 개의 노란 가방에 똑같은 과자를 하나씩 넣어주셨다. 그중의 하나가 칸쵸였다. 동생과 내가 너무 좋아했던 칸쵸. 다른 과자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빨간 하트모양에 둥글둥글한 글씨의 칸쵸만 생각난다. 김밥 넣을 자리 남겨둔 가방 지퍼는 아침에 닫힐 터였다. 얼른 내일이 왔으면 했다. 지퍼 닫고 빵빵해진 가방 메고 집을 나서는 내일 아침, 들뜬 마음으로 가방 한 번 더 쳐다보고 잠들었다.
소풍 날 아침에 눈 뜨면 벌써 김밥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동네서도 알아주던 음식 솜씨의 엄마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는데 그때 엄마의 김밥엔 햄도 맛살도 시금치도 아낌없이 들어갔다. 엄마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 엄마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생님 김밥 도시락을 내가 싸가겠다고 손들었던 적이 있다. 엄마가 매우 당황해하며 부담스러워했는데 아마 김밥이 맛없을까 봐 걱정돼서였던 것 같다.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선생님께서 정말 맛있게 드셨고 엄마에게 맛있었다고, 감사하다고 꼭 전해달라 하셨다.
하지만 소풍하면 칸쵸도 김밥도 아닌 엄마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 봄 소풍 때였다. 그땐 나뿐 아니라 반 친구들 엄마가 다 따라왔던 것 같다.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친구들 사이사이에 엄마들이 앉았다. 각자 싸 온 김밥과 간식을 나눠 먹었는데 햇빛이 쨍하게 들다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추웠던 기억이 난다.
바람이 한차례 세게 불었다. 잔나뭇가지와 흙먼지가 무섭게 날아왔다. 몸을 움츠렸다. 순간 따뜻한 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엄마가 온몸으로 나를 안고 있었다. 많은 기억이 사라진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봄 소풍. 애써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그 장면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바람이 나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너른 텐트처럼 꼭 안아줬던 엄마의 따뜻한 품. 어린 시절 종종 그 품을 생각했다. 엄마에게 혼나서 무서웠던 날도 엄마가 미웠던 날도 그 품을 생각하면 엄마가 좋아졌다. 사랑받은 기억은 아주 짧은 포옹이라도 이렇게 오래 살아남는구나.
엄마랑 소풍 가고 싶은 날이다. 바람 불면 엄마를 안아줘야지. 이제 나도 엄마만큼 품이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