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종이를 반듯하게 펴고 한 자 한 자 정성껏 글씨를 쓸 때 마음에 안정을 느낀다. 서걱서걱. 펜과 종이가 닿아 만나는 소리도 좋고, 그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함도 좋다. 나무 그늘을 산책하며 시원한 바람을 맞는 만큼 좋아하는 일이다. 아주 오랫동안 내 취미는 편지 쓰기였다.
고등학교 쉬는 시간이면 내 책상 앞에 여러 명의 친구가 모였었다. 친구들 손에는 꼭 엽서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좋아하는 체육, 영어, 수학 선생님께 드릴 엽서를 내게 써달라고 부탁했다. 뭐라고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엽서 내용도 글씨도 다 내가 썼다. 내가 써준 글을 보며 좋아하는 친구들 모습에 괜히 뿌듯했다. 깜지처럼 여백 없이 썼으니 분명 그 엽서를 받은 선생님들도 좋아하셨을 거다.
여러 글씨체를 갖고 있어서 고3 땐 회의일지를 기록하는 서기였다. 지금 그랬다간 큰일 나겠지만 담임선생님께서 메모장에 적어주신 반 친구들의 생활기록부를 내가 썼다. 회의일지를 쓴 내 글씨체가 선생님의 글씨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혹시 잡혀간다면 공소시효를 들먹여볼 생각이다.
고등학교 친구 현정이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광대뼈가 욱신거릴 정도로 웃고 통화하다가 내 글씨 이야기가 나왔다.
“은희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손글씨 네가 쓴 거 맞지?”
그때의 내 글씨가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내 글씨 특유의 꺾임이 지금도 남아있다며 반가워했다. 오래전 내 글씨를 반가워해 주는 친구가 있다니. 아니 그 글씨를 기억해주는 친구가 있다니 묘한 감정을 느꼈다.
“좋으니. 내가 네 글씨 참 좋아했다.”
한동안 친구의 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누군가를 위해 수없이 썼던 내 글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엄마의 손 편지를 처음 받은 날이 생각났다. 20대 초반 생일이었다. 샛노란 편지지에 쓴 엄마의 글씨를 오래 쳐다보았다. 긴 문장으로 된 엄마 글씨를 처음 봤다. 오징어, 밀가루, 국물용 멸치 등 장사 준비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적거나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메모해 놓은, 주로 짤막한 글만 보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문장으로 된 엄마의 글을 본 것이다. 엄마의 글씨가 슬퍼 보였다. 줄이 없는 종이가 엄마가 걸어온 길 같았다. 샛노란 편지지가 엄마의 청춘 같았다. 모난 것 없이 동그란 글씨가 엄마의 마음 같았다. 자간 행간 정렬이 맞지 않는 글씨체가 엄마가 살아온 삶 같았다. 편지지 한 장에 엄마의 인생이 보였다. 고운 내 글씨와 비교되었다. 엄마는 오래 글을 쓴 손이 아니었다.
엄마의 고운 손은 거친 세상을 만나 치열하게 살아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엄마 손은 펜을 잡는 손 근육이 어색했을 것이다. 고생만 한 엄마 손이 엄마 글씨에도 보였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가면 엄마는 내게 설거지 한 번도 못하게 했다. 못하게 한다고 안 한 나였다. 내 손은 컴퓨터 키보드, 피아노 건반이나 두드렸다. 예쁜 커피 잔을 들었고 몇 개의 반지를 꼈다. 내 손에는 핸드크림 향이 났지만, 엄마 손에는 밥 냄새가 났다. 고생 한 번 하지 않은 내 손, 약하기만 한 내 손이 미워 보였다.
엄마의 편지를 보며 다음번에 엄마를 만나면 꼭 손잡고 걸어야지 다짐했다. 부끄러워서 손잡고 걷기는 매번 실패하고 괜히 “엄마”하고 안기만 했다. 이번 추석엔 드디어 엄마 손을 잡았다. 고생만 한 엄마 손이 거칠고 까슬까슬할 거라 생각했는데 부드러웠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엄마의 손을 잡으니 엄마를 꼭 껴안은 것 같았다. 다음번엔 더 오래오래 잡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