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마다 연락 오는 친구가 있다. 일 년에 한 번은 꼭 통화하는 친구. 대학 졸업하고 벌써 몇 년째 한결같다. 일 년에 한 번은 꼭 통화한다는 건 둘 중 한 명은 안 한다는 건데 안 하는 애가 나다. 핸드폰 화면에 친구 이름이 뜨면 받기도 전에 웃음이 나온다. 아, 이번에도 친구만 나를 챙겼구나.
멋쩍어서 웃는 나, 내 멋쩍음을 즐기는 친구. 우리 둘은 목소리에 장난기를 잔뜩 묻혀가며 한참 대화한다. 친구 생일을 못 챙겼다고 해서 엄청 미안하거나 그렇진 않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안다. 멋쩍지만 당당한 나다. 그럴 수 있는 친구니까. 그저 오랜만의 연락에 들뜨고 반갑다. 친구와 통화할 때마다 다짐하고 약속한다. 내년엔 꼭 챙겨야지. 두고 보겠어라고 말하는 친구와 내기한다. 보나 마나 내가 진다. 이상하게 매번 생일 직전까지 기억하고 당일이면 홀랑 까먹는다. 5빼기 2는 3이라고. 영영 자기 생일을 기억하게 만든 친구. 생일 날짜까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인데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걸까.
밤 10시쯤엔 고등학교 친구에게 카카오톡 선물이 도착했다. 이게 대체 몇 년 만인가. 카카오톡 덕분에 세계 어디에 있던 서로의 거리감이 많이 줄었지만 창원과 서울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그렇게 친했던 친구였는데도 일 년에 한 번은커녕 몇 년간 연락을 안 할 때도 있다. 당연하지만 선물보다 친구 이름이 더 반가웠다. 고맙고 미안해서 어쩐지 안절부절. 친구는 "나도 나 살기 바빠서 잊고 산다. 이렇게 생존신고하고 살다 보면 언젠가 얼굴 한번 보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보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와 안부를 주고받다가 몇 개월 전부터 유방암 투병 중이란 말을 들었다. ZOOM으로 강의를 듣는 중이었는데 하마터면 울뻔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전화했다.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한 그때 그 목소리. 밝고 다정했지만 힘은 조금 없어 보였다. 서울 왔을 때 보고 싶어서 연락할까 했지만 머리카락이 없어서 도저히 용기가 안 났다는 친구. 내 무심함에 나에게 속상했다. 눈물을 가까스로 참았다.
친구가 자꾸 내 안부를 물었다. 엄마 안부도 물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 연락하지 않은 건지 시기가 훨씬 지난 안부를 물으니 생각나지 않는 것도 많았다. 이 친구는 항상 어른스러웠다. 나는 이 친구 앞에서 한참 어린 동생 같다. 1월에 딸과 서울에 온다고 했다. 꼭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날을 기다린다. 연말이 오면 빠르게 지나가버린 시간 앞에 무력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12월은 붙잡아 두고픈 마음인데 친구 덕분에 내년을 기다린다. 사는 게 바빠 서로 잊고 지낸다지만 내게 첫 친구 같은 친구. 몇십 년이 흐르고 흘러 만난 대도 어제 만난 것 같을 그런 친구.
무심한 나를 한결같이 챙기는 친구들. 서운함도 질투도 바라는 것도 없는. 복잡하지도 꼬인 것도 계산할 것도 없는. 이런 관계 참 좋다. 편하고 느슨하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반갑다. 눈에서 멀어졌어도 마음은 멀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무심한 친구를 챙기는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