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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Nov 22. 2023

덕분에 웃는 하루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


우리 회사는 총 7층 건물이다. 1층은 카페는 아니지만 카페 분위기의 휴게실이 있고, 2층과 3층은 사무실, 4층은 숙소, 5층엔 영어 유치원이 있다. 6,7층에도 숙소가 있는 것 같은데 여태 4층 이상 올라가 본 적이 없어서 뭐 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3층이다. 입사 초기 부천에서 강남까지 다니느라 너무 피곤해서 화장을 못하고 출근한 적이 있는데 당시 차장님이 아픈 줄 알고 숙소에서 쉬고 오라고 했다. 아프진 않았지만 오전 내내 푹 자고 왔다.


영어 유치원이 들어오면서 등, 하원 시간마다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는다. 소방훈련 할 때면 선생님 목소리 따라 5층부터 1층까지 비상계단 내려가는 연습을 하는데 종종 대는 발소리가 귀엽기만 하다. 건물 정문, 후문 주차장에 나란히 서있는 노란 봉고차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다. 1층 카페엔 아이들을 기다리는 기사님들이 더위를 식히고 추위를 녹인다.


출근 시간에 종종 원어민 선생님과 등원이 늦은 아이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버튼 있는 쪽에 서는 습관이 있다(회사 엘리베이터만). 그래서 5층 버튼을 먼저 눌러주고 3층을 누른다. 아이가 버튼을 누르고 싶어 하면 살짝 비켜선다. 한 손에 꼭 커피를 든 원어민 선생님이 웃으며 "땡큐" 인사하지만 간단한 영어 한마디도 부끄러워 미소로 답한다. 가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원어민 선생님들은 분위기와 말투부터 친절한데 한국(?) 선생님들은 왠지 카리스마가 있다. 말투와 분위기부터가.


출근길 회사 정문 앞에서였다. 차에서 아빠가 내리고 뒷문을 열어주니 남매가 내린다. 남자아이가 회사로 걸어오는 나를 보며 웃는다. 그리고 아는 사람인양 나를 쳐다보며 입모양이 나를 부른다. 뭐라고 불렀을까. 들리진 않았는데 아빠가 쳐다볼 때 웃으면 부끄러울 것 같아 몰래 아이를 보고 힘껏 웃어주었다. 정말 힘껏 웃었다. 온 얼굴 근육을 다 움직여서. 힘껏! 그랬더니 아이도 더 환하게 웃는다.


엘리베이터에 먼저 탄 나는 남매와 아빠를 기다려주었다. 아이들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한다. 나도 몸을 숙여 인사했다. 5층을 누르고 3층을 눌렀다. 3층에서 내릴 때 아이들에게 꼭 인사해야지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인사할 때 지금껏 "안녕" 하고 인사했던 게 생각났다. 아이들이 좋아서, 예뻐서 그랬지만 오늘은 왠지 존대로 인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3층에 도착했다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다. 인사하려고 뒤돌아 서는데 "안녕히 가세요." 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배꼽인사하는 아이들 정수리가 보였다. 웃음이 나서 나도 몸을 숙여 "어, 안녕히 가세요."하고 인사했다. 옆에 있던 아빠가 함께 웃었다. 아이들의 무해한 발랄함에 어이없으면서도 기특했던 두 어른은 몇 번이나 몸을 끄덕이며 인사했다. 아이들은 해맑고 어른들은 어색했다. 하지만 모두가 웃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내내 두 아이의 목소리가 나를 따라와서 재잘거렸다. 아이들의 웃음이 하루종일 나를 기쁘게 했다.


또 만나면 좋겠다. 같은 건물에 있을 텐데. 너무 잠깐 봐서 벌써 아이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웃는 얼굴, 쩌렁쩌렁한 목소리, 배꼽인사하던 정수리뿐. 그래도 회사 주차장을 지날 때면,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3층에 도착할 때면 그 아이들이 기억날 것 같다. 그러니 아주 오래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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