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학기, 세 번째 수강 신청. 새로 개설된 강의가 보였다. 출판 편집의 이해. 맞아, 내가 이걸 배우려고 문예창작학과에 들어왔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수강 신청 버튼을 클릭했다. 그간 출판 관련 일을 해오면서도 디자인 작업만 하다 보니 편집자의 일이 궁금했다. 모르는 것이 많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편집자의 일에 관해서는 강의 안에서도 특강처럼 잠깐 다루는 정도여서 아쉬웠다. 일 년 간 글쓰기만 배웠다.
글쓰기만(?) 배웠지만 이 과정 역시 편집자의 일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었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좋은 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직접 글을 쓰면서 느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이라고 하자니 극단적인 것 같은데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으니 일단 넘어가기로. 어쨌든 '좋은'이라는 것 자체가 편애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니. 넘어가기로 해놓고 이러는 건, 좀 그런가. 아무튼 작가 중엔 편집자 출신이 많고 편집자이자 작가도 많다.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님도 편집자 출신이다.
강의는 연두 출판사 대표이자 17년 차 편집자이신 김유정 교수님께서 맡으셨다. 강의는 조금 딱딱하게 느껴졌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유익했다. 강의 내내 많이 긴장하셨는지 목소리가 떨리셨다. 하지만 ZOOM 라이브 강의(이하 라강)에서는 달랐다. 떨지도 않으시고 너무 편안하고 멋지게 수업을 이끄시는 게 아닌가. 출판 편집의 이해 수업은 전체 수강생이 50명 정도여서 다른 라강에 비해 참여자가 적었다. 보통 다섯 명에서 일곱 명 정도 참여했다. 나는 매주 라강에 꼬박꼬박 참여했다. 심지어 내가 너무 좋아하는 과목의 라강을 전부 포기하면서.
라강 참여는 필수는 아니다. 한 주간 강의를 듣고 교수님과 직접 소통하며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에세이 첨삭을 받거나 소설, 시, 동시, 그림책 등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는 시간이다. 학과마다 과목마다 라강이 있으니 시간이 겹칠 때가 많고 하루에 연달아 두세 번을 들을 때도 있다. 필수는 아니지만 교수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라강이 너무 재밌어서 한번 참여하면 계속 참여하게 된다.
매주 소수의 인원이 ZOOM에서 만나다 보니 금세 편해지고 정들었다. 마지막 라강에서 모두 너무 아쉬워했고 교수님께서 연락하라며 연락처도 주셨다.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저는 밥과 술을 잘 삽니다."라고. 너무 멋진 교수님이셔서 나는 수강신청할 때마다 학우들에게 이 수업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그렇게 수강한 학우들 모두 한결같이 말한다. 김유정 교수님 수업은 라강이 정말 좋습니다. 라강을 꼭 들으세요.라고.
우리는 라강 시간에 편집 회의 하듯 서로의 생각과 고민과 아이디어를 나눴다. 교수님께서 매주 공지 게시판에 원고를 올려주셨다. 한 주간 원고를 읽고 책 제목을 지어 오고 보도자료를 써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떤 원고는 확신이 서지 않으니 원고를 읽고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편하게 말해달라고 하셨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원고를 읽으니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편집자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책을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확신 없는 원고를 독자에게 사라고 홍보할 순 없는 일이니까. 교수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맞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매번 시간에 쫓겨가며 원고를 읽어야 했지만 제목 짓는 것도 보도자료 쓰는 것도 너무 재밌었다. 보도자료를 쓸 때 교수님께선 어떻게 쓰셨나 찾아보고 수십 권의 책 보도자료를 찾아봤다. 보도자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 책의 운명이 달라진다. 보도자료만 보고도 궁금하고 읽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고민고민하면서 써온 보도자료를 쑥스러워하며 읽었다. 읽는 동안에도 내가 이 원고의 맥을 잘 잡은 게 맞는지 헛다리 짚은 건 아닌지 자신 없었다. 보도자료를 다 읽고 나니 교수님께서 전혀 예상치 못한 칭찬을 해주셨다.
"우와, 좋으니 학우님은 디자이너로만 남긴 너무 아까워요. 꼭 편집자가 되세요."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정말 기뻤다. 종종 이 말을 떠올린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라강을 통해 한 권의 책에 담긴 편집자의 수고와 애정을 느꼈다. 또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말은 책을 만들 때 작가와 편집자 다음으로 애정을 가지는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했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최대한 듣고 존중한다고. 가끔은 디자이너에게 제목을 묻기도 한다고.
정말 그렇다. 나도 내가 제목을 지은 책이 많다. 원고가 넘어오면 자세히는 아니지만 편집하면서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와 흐름을 본다. 교정지가 넘어오면 수정하면서도 계속 원고를 읽게 된다. 원고 내용과 어울릴만한 표지를 내지 작업하는 내내 고민한다. 디자이너의 마음을 알아주는 편집자의 말을 들으니 그렇게 위로될 수가 없었다.
교수님과 우리는 돈독해지고 편해졌다. ZOOM 화면으로 보이는 얼굴들이 모두 즐거웠다. 교수님은 매 시간 반짝이는 눈으로 "너무 좋아요."라고 하시며 화면 가까이 와서 우리를 바라보셨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교수님께 웃으며 말했다. 강의에서는 너무 긴장해 보이셨는데 라강은 너무 편해 보이신다고. 교수님께서는 카메라 앞에 혼자 서서 강의하는 것이 너무 낯설고 떨렸다고 하셨다. 이렇게 매력이 넘치는 교수님이신데. 강의만 듣고 김유정 교수님의 매력을 반의 반도 모르고 지나치는 학우들이 많을까 봐 아쉽다. 나는 이번 학기도 김유정 교수님의 홍보요정이 되어 이 수업을 적극 추천할 예정이다.
일 년이 지나고 내가 과대표가 되었을 때 여름 종강파티에서 교수님과 만나게 됐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유, 예쁘다." 하시며 내 손을 잡아주시고 토닥여주셨다. 그리고 몇몇 학우님들과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밥과 술을 잘 사는 교수님과 학우님들 몇몇이 다시 만났다.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라강 시간에 함께 읽고 제목을 짓고 보도자료를 썼던 책을 선물로 주셨다.
헤어질 때 교수님께서 독서모임을 만들자고 연락하라고 하셨는데 아직 만들지 못했다. 다들 직장 다니면서 육아하고 강의 듣고 과제하고 공모전 준비하고 특강 듣고 하다 보니 좀체 시간이 나질 않았다. 이 약속이 언제 지켜질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교수님과 독서모임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 교수님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우리를 기꺼이 받아주실 것이다. 그분은 그런 분이니까.
매거진 <싸대기>는 세종Cyber대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우고 쓰면서 만난 설렘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기록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