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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Dec 20. 2023

조 총무가 됐다

2022년 한마음축제 때 학과 부스 꾸미기 도와주는 학우님들




2022년은 우리 과에 깊이 빠지게 된 한 해였다. 2021년 편입했을 당시만 해도 학과 전체 단톡방이 귀찮아서 빠져나올 시기만 엿보고 있었고 대단한 목표나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학우들의 열정이나 포부를 들을 때면 나와는 너무 온도가 다르다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언제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시큰둥하게 시작했던 첫 학기를 지나 일 년을 마무리하고 2022년 봄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어느새 우리 과에 정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종강하고 겨울 방학 때 학과 부대표였던 학우에게 메시지가 왔다. 저녁쯤 통화할 수 있냐는 거였다. 학과 부대표가 내게 무슨 볼일이 있을까 의아했다. 내내 궁금해서 혼자 생각하다 어쩌면 학과 일을 맡기려고 그러는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설마. 나 너무 김칫국이네,라는 생각과 함께 금세 잊어버렸다. 하지만 언제나 설마가 사람 잡는 법(?). 실제로 학과 부대표를 맡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미 단톡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가볍게 배우러 왔는데 임원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하는 일이 많은데 학과 일까지는 너무 버거웠다. 조심스레 거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 대표, 부대표가 정해졌고 이후 총무를 모집했다. 부대표 제안을 거절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던 나는 고민 끝에 총무를 맡기로 했다. 당시 총무도 제안받았었던가. 겨우 이 년 전 일인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총무 모집에 지원자가 없었고 괜히 혼자 안절부절못했던 것 같다. 사이버대의 경우 거의 모든 과가 임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다. '굳이', 정말이지 '굳이' 지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육아와 직장일을 겸하여 공부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닌데 사서 고생하는 일을 누가 나서서 하려고 할까. 정말 희생이고 봉사다.


학과 밴드에서 총무가 올린 게시글을 검색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알아봤다. 임원진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총무는 회계 정리만 하면 되는 것 같았고 그 정도의 부담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일이 주어지는 순간 책임감이 불타올라서 새로운 일 맡는 것이 버겁다. 잘하고 싶기도 하고 내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그 때문에 나로 인해 피해 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총무를 맡기로 했을 때 말하면서도 부담스러웠다. 간단한 일임에도 그랬다. 누가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스치듯이 말한 것이라도 내게 제안한 일이라면 모른 척 넘기지 못하는 나는 그 부담을 기꺼이 감당하기로 했다. 무슨 감당 까지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성격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다행히 총무를 맡으면서 내가 한 일은 크게 없다. 나는 그저 편하게 숟가락만 얹었을 뿐 정말 부담 없이 학과 일을 했다. 나중에 쓰겠지만 학과 대표로 일 년을 지내고 보니 그동안 대표, 부대표를 맡아준 학우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절로 감사가 나온다. 아무튼 그렇게 총무 타이틀을 달고 2022년이 시작됐다.


2020년에 개설된 우리 과(문예창작학과)는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모임을 할 수 없었다. 2022년 4월이 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사적 모임 제한도 완화되면서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학우들을 만났다. 첫 만남은 6월 여름, 화곡에서였다. 그리고 7월 초 종로에서 학과 첫 벙개 모임이 시작됐다. 화면으로, 글로, 댓글로, 단톡에서만 만나던 학우들을 실제로 만나다니. 반갑고 뭉클하고 기뻤다. 처음 만났지만 낯설지 않았다. 글로 만난 우리는 처음 만났으나 이미 깊이 아는 사이였다.


벙개 장소로 들어가기 전 마스크 눌린 자국이 없나 손거울로 얼굴 상태를 확인했다. 한 계단 한 계단 학우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일정상 조금 늦게 도착해서 홀로 입구에 서서 자기소개를 했다.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공으로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학우들끼리는 이미 자기소개가 끝났고 누가 누군지 나만 모르는 상황이었다. 부끄러운 자기소개가 끝나고 자리에 앉았다. 제일 먼저 사진과 화면으로 얼굴을 알고 있던 학우와 인사했다. 두근거렸고 너무 반가웠다.


옆에 앉은 학우들이 앞접시에 음식을 담아줬지만 왠지 긴장되어 사이다만 벌컥벌컥 마셨다. 학우들 이름을 물어봤다. 이름만 익숙했던 학우들을 실제로 마주하니 그 또한 너무 설렜다. 그리고 몇몇 학우들이 나를 너무 반겨주셨다. 손잡아주고 안아주고 상기된 목소리로 응원해 주셨다. 아무래도 동생에 대해 쓴 에세이를 읽은 터라 내가 너무 기특했던 모양이다. 그 따뜻한 환대를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렇게 실제로 만나고 나니 학과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 학과 분위기도 점점 따뜻해지고 활발해졌다. 물론 이전에도 따뜻했지만, 첫 벙개 이후로 학우들끼리 소소하게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학과에 대한 내 애정의 화룡점정은 여름방학과 가을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주 베려버린 것이다.




매거진 <싸대기>는 세종Cyber대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우고 쓰면서 만난 설렘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기록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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