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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Jan 03. 2024

별미 같은 말

Pixabay로부터 입수된 Photo Mix님의 이미지입니다.



일부러 멀어진 사람이 있다. 만나면 내내 제 얘기만 하던 사람이었다. 다소 민감한 타인들 화제도 곧잘 꺼냈는데 거의 부정적인 험담에 가까웠다. 그 앞에서 내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귀담아듣지도 않을 테지만 언제라도 내 얘길 소문낼 사람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 매사 부정적인 사람, 소문내길 좋아하는 사람. 그저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도 돌아오는 길에는 몸과 마음이 두들겨 맞은 듯 힘들었다. 한편으론 불편한 대화에도 고갤 끄덕이던 내가 부끄러웠다. 왜 반박하거나 거절하지 못했을까 후회스러웠다.

_고수리 작가, 동아일보 『관계의 재발견』 칼럼 중 「독 같은 사람 멀리하기」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 나도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세상 누구라도 이룰 수 없는 불가능이란 걸 안다. 마음은 티가 나고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티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고수리 작가님의 ‘독 같은 사람 멀리하기’ 칼럼을 읽었을 때 누구에게나 힘든 관계가 있고 그 모양은 이래저래 다 비슷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내 언어는 어떠한가 돌아보게 됐다. 독 같은 사람이 나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내 주위엔 칼럼에 나온 사람과 정반대의 사람이 있다. 밝고 묵직한 그리고 선한 성품이 닮고 싶은 사람이다. 어떤 그룹에 있던 사랑받고 인정받는 사람. 어디서든 빛나고 눈에 띄는 사람. 나보다 한참 어린데도 때로 움찔할 만큼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람. 흉내 낼 수 없는 분위기. 그 힘은 말에 있었다. 지금껏 부정적인 말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을뿐더러 때로 그럴만한 상황이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았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아끼고 아끼는 사람. 타인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 설령 누군가의 험담을 듣더라도 그 험담에 가담한 적이 없고 그저 흐, 하고 웃고 말 뿐이었다. 말하는 사람에게 공감해 준다는 이유로 그 말들에 고갤 끄덕이거나 호응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을 지키며 남들이 뭐라던 자기 분위기를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는 모습. 그 자존감이 부러웠다. 거기서 나오는 품위가 멋있었다. 그를 보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 대부분이 말에 관한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는 일이 말을 절제하는 일이다. 그만큼 일상에서 자주 무너지는 영역이다. 귀찮아서, 화나서, 욱해서, 급해서, 오해해서, 힘들어서, 괴로워서, 찔려서, 얄미워서, 약 올라서, 싫어서, 좋아서, 슬퍼서, 두려워서, 허무해서, 답답해서, 속상해서, 자존심 상해서, 실패해서, 내 생각과 달라서 등등. 그럴 때마다 툭툭 내뱉은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본다.


잠언에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미와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간다”는 말씀이 있다. 별미. 특별히 좋은 맛이다. 한번 맛보면 계속 먹고 싶은 맛. 그러니 누군가에 대해 험담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참는 건 힘든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내 속상한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라며 금방이라도 우두둑 터져 나올 것 같은 부정적인 말을 삼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억울하고 속상하고 오해하고 미움받을 때 조목조목 해명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말을 쏟아 내고 나면 언제나 남는 건 후회, 부끄러움, 찝찝함이었다. 후련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말을 덮으려고 또 다른 말이 쌓여 말에 잠식당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그 말들은 내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서 내 안에 쌓였다. 험담의 자리는 그렇게 티가 났다.


언제쯤이라야 내 입의 언어를 품위 있게 지킬 수 있을까. 어제보다 오늘 덜 후회할 수 있을까. 힘든 말들이 쏘아붙여도 묵묵히 넘겨낼 수 있을까. 그 말들을 걸러 내면 내 안에 어떤 것이 쌓여있을까. 단 한 글자인 말. 단 한마디 말. 단 몇 초 만에 과거 현재 미래까지 소환하는 말. 순식간에 평생을 사로잡게 만드는 말. 그 말을 절제하며 스스로를 지켜내고 싶다.


생각나지 않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내게서 떠나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 남아있을지 알 수 없는 내 말들을 생각하며 독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길 다시 한번 다짐한다. 다짐하기 좋은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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