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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Jan 05. 2024

애틋한 엄마의 부엌

Pixabay로부터 입수된 Jerzy Górecki님의 이미지 입니다.



그 후로 수십 년, 엄마와 아빠는 반찬을 만들며 지금까지 용감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노동의 강도가 지나치게 높아서 나는 늘 간판만 봐도 가슴이 아프다. 할머니도 그랬다. 말년의 할머니는 딸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가슴을 쿡쿡 눌렀다. 그러면서도 매일 엄마 가게에 들렀다. 아픈데도 매일 들러서 아픈 걸 봤다. 참 이상하지, 사랑은 그렇게 묘한 방식으로 지속되는 애틋한 마음의 운동.

_ 고명재 산문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중



엄마는 지방에서 국수 가게를 하신다. 식당 일로 온종일 요리하면서도 반찬이 떨어질 때쯤엔 어김없이 각종 밑반찬과 쑥국, 미역국, 잡채 등을 가득 보내신다. 일 할 때도 쉴 때도 매일같이 음식을 하는 엄마가 안타까워 명절에 집에 내려가면 한 끼라도 엄마를 위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다. 어차피 엄마 손맛은 따라가지 못할 테고 평소에 잘 먹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음식, 무엇보다 그나마 내가 잘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니 스파게티가 딱이었다.


해물칼국수와 충무김밥을 하는 엄마 가게 냉장고에 항상 있는 통통한 오징어와 큼직한 새우 그리고 홍합. 스파게티 면과 시판용 토마토소스만 있다면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맛을 낼 수 있었다. 국수를 삶는 널따란 웍에 물을 끓이고 스파게티 면을 넣었다. 물이 끓는 동안 양파 찹찹 썰고 오징어와 새우도 손질해 두었고 새콤 달달한 시판용 토마토소스도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오랜만에 집에 온 딸이 스파게티 하나 만드는 것도 마음 불편하셨는지 엄마는 가스 불 앞을 떠나질 않으셨다. 내가 알아서 다 한다는데도 엄마는 스파게티 면을 휘휘 저으며 면이 익기를 기다리셨다. 딱딱하던 스파게티 면이 부드럽게 익자 엄마는 면을 건져내 소쿠리에 담았다. 그리고 찬물에 빨래하듯 박박 씻기 시작했다. 온종일 국수면을 삶아내는 엄마는 스파게티 면도 그렇게 씻어야 하는 줄 아셨을 거다.


스파게티 면은 찬물에 헹구지 않아도 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는 엄마가 그걸 모를 거란 생각을 못 했다. 잘 익은 스파게티 면을 소쿠리에 담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제 볶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찬물을 틀고 면을 씻어내는 엄마를 보니 콧등이 매웠다. 괜히 큰소리로 웃으며 엄마 옆으로 갔다.


“엄마, 스파게티 면은 찬물로 안 씻어도 돼.”

“그렇나.”


찰박찰박. 스파게티 면을 때리던 소리가 멈췄다. 좁은 부엌에서 수도 없이 국수 면을 씻었을 엄마의 뒷모습이 아프고 서러웠다. 세월의 무게에 점점 내려앉은 둥그런 엄마의 등. 시간이 지나간 흔적을 등에 지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혹시 엄마는 한 번도 스파게티를 먹어본 적 없었을까 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가족과 여러 번 스파게티를 먹었지만 그땐 정말 그렇다고 할까 봐 차마 묻지 못했다.


찬물에 젖어 꼬들꼬들해진 스파게티 면의 물기를 털어내며 끝날 줄 모르고 따라붙는 먹먹한 마음을 털어냈다. 계속 생각하다간 울 것 같아서였다. 넉넉하게 넣은 해산물과 시판용 소스 덕분에 맛있는 스파게티가 완성됐다. 국수를 삶아내던 널따란 웍을 식탁에 그대로 들고 와 접시에 한 젓가락씩 덜어 먹었다. 세련된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낸 스파게티는 아니었지만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형편이 한창 어려웠을 시절 허름하고 낡은 부엌에서 뚝딱뚝딱 다섯 식구의 밥상을 차려내던 엄마. 좁은 부엌에서 엄마가 만들어 낸 음식은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퐁실퐁실 달달했던 카스텔라부터 엄마표 떡볶이, 멸치무침회, 아구찜, 피자, 묵은지김밥 등등. 엄마는 배우지 않고도 어쩜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냈을까. 그중 제일은 비빔국수였다. 그 시절 주말 밥상엔 자주 비빔국수가 올라왔다. 야채 몇 가지와 면만 넣은 엄마의 비빔국수는 언제나 고봉 국수였다. 어떻게 다 먹나 싶었지만, 엄마가 만든 비빔장은 면을 끝없이 입으로 가져가게 했다.


넉넉하지 않던 살림살이로 가족을 배불리 먹인 엄마의 부엌을 생각하면 애틋하고 정겹다. 엄마가 부엌에 있으면 좋았다. 엄마가 오늘은 또 어떤 맛있는 걸 만들어주실까 기대됐다.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쳐다보는 것도 좋았다. 엄마는 힘들었겠지만 나와 동생을 위해 간식을 만들고 가족을 위해 밥을 짓던 그 부엌이 나는 그렇게도 좋았다. 별것 없는 재료로도 맛깔나게 음식을 만들던 엄마는 주위 사람들에게 음식 장사를 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용기를 낸 엄마는 7평 남짓 허름한 가게에 국숫집을 열었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 무엇보다 맛있었기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엄마는 엄마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며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엄마는 자는 시간을 빼곤 늘 부엌에 있다. 수없이 찬물에 손을 담그고 썰고 볶고 끓이고 무친다. 엄마 손은 원래 그런 양 벌겋고 퉁퉁하게 부어있다. 5,000원짜리 국수를 온종일 끓여내며 우리 가족을 먹이고 입혔다. 덕분에 쌍둥이 동생들이 행복하게 노래하고 고요하게 도자기를 굽는다.


“엄마 이제 힘들어서 장사 오래 못하겠다. 딱 3년만 더 하고 안 할란다.”

딱 3년만. 정말 딱 3년만 지나면 엄마는 부엌을 벗어날 수 있을까. 장사는 안 하더라도 아마 그때도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을 테지. 소담스럽고 행복하게. 엄마는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국수를 삶는다. 엄마처럼 조그맣고 애틋한 부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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