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애쓰당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으니 Apr 18. 2022

언니야, 나 대단하제



2022년 2월 9일. 아빠 차에서 내리던 동생이 앞으로 넘어졌다. 얼굴에 상처도 나고 앞니도 깨졌다. 소식을 듣는데 도르르 쿵.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날 저녁 안 아픈 치과, 장애인 치과 등등 여러 검색어를 넣어가며 치과를 찾았다. 검색하다 우리 동생처럼 치과 치료가 어려운 장애인이나 몸이 약한 분들을 위해 수면 마취로 치료하는 치과를 찾았다. 아빠에게 링크를 보내드렸다. 그렇게 가게 된 치과가 창원 365바른약속치과다.


치과를 가는 첫날.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동생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간단한 엑스레이를 찍는데도 덜덜 떨었다. 손은 차고 몸은 경직되었다. 첫째 날은 치아 상태만 확인하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신경을 건드리지 않은 것, 수면 마취가 가능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걱정의 반 이상을 덜었다. 수면 마취는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 조금 비싸다고 했다. 아프지 않게 치료할 수 있다는데 돈이 대수랴. “100만원이 들어도 해야지”라는 엄마 목소리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의료진들은 또 얼마나 친절한지. 


새하얗게 질린 동생을 데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치과를 찾은 아빠는 의료진을 칭찬하시느라 목소리가 높아지셨다.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야. 이제 됐어. 마취하고 치료만 하면 되겠구나. 그렇게 별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다. 

 

두 번째 날이 되었다. 동생은 전날부터 금식이었다. 나 빼고 - 아빠가 쓴 글을 보고서야 알았다 - 온 가족이 금식했다. 그날은 도우미 선생님도 함께 가셨다. 동생이 준비될 때까지 모두가 기다렸다. 치료 중간 중간 의료진 분들이 오셔서 동생을 챙겨주었다. 안정을 위해 잠깐 치과 밖으로 나온 동생을 도우미 선생님이 설득했다. 동생은 결심한 듯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여기 있으세요. 선생님이랑 가서 치료받고 올게요” 


하지만 끝내 치료하지 못했다. 동생의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져 마취과 선생님이 막 퇴근하셨기 때문이다. 희망을 본 것으로 만족했다. 집으로 오는 길, 온종일 쫄쫄 굶은 아빠와 동생이 식당에 들어갔다. 오리구이를 먹는데 동생이 어찌나 많이 먹던지 아빠가 그만 먹으라고 말릴 정도였다고. 그래, 얼마나 무서웠겠어. 엄마, 아빠, 나는 동생을 다독였다. 이렇게 조금씩 치과와 친해지길 바랐다. 


세 번째 날이 되었다. 치과 치료가 뭔지 동생은 온 동네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다. 돈가스를 사주며 응원한 분도 계셨다. 동생도 이번엔 꼭 치료받고 오겠다며 약속했다. 하지만 또다시 그냥 돌아왔다.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준 의료진에게도 미안했는지 치과를 나오던 동생이 뭔가를 생각하다 말을 건넸다.


“아빠, 병원에 빵 좀 사다 주면 안 돼요?”


아빠는 동생 말을 듣고 근처 빵집으로 가셨다. 달달하고 맛있는 빵을 골라 담으셨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도 꾹꾹 눌러 담아 전하셨다. 이러지 않으셔도 된다며 민망해하던 의료진 분들에게 아빠는 더 큰 힘과 위로를 받아 오셨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성진이 마음이 참 따뜻하구나. 기특했다.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웃음이 났다. 








네 번째 날이 되었다. 또다시 그냥 돌아왔다. 아빠는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글을 쓰셨다. 엄마는 참다못해 동생을 혼내셨다. 나도 속이 뒤집혔다. 

장애인 아이를 키우는 건 절대 쉽지 않다. 하루 이틀 봉사로 만나는 것과 평생 지지고 볶고 살아야 하는 가족과는 천지 차이다. 가르쳐야 하고, 지켜야 하기에 혼내고 다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렇기에 때론 보이는 현상만으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쉽게 오해받기도 한다. 


아빠는 벌써 네 번째다. 또다시 예약을 해야 하는 아빠는 며칠을 미루셨다. 전화 한 통의 무게가 실로 엄청났을 거다. “그래도 내가 해야지 우짜겠노” 하시며 다섯 번째 예약을 하셨다.

4월 16일 토요일 오후 3시.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 성진이 치과 가는 날이라고 표시해두었다. 그날은 엄마도 가게 문을 닫고 함께 가기로 하셨다. 20여 일 동안 우리 가족은 내내 동생을 안심시켰다. 


드디어 그날이다. 오후 2시 30분. 치과로 향하는 차 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동생과 함께 기도했다. ‘아멘’하고 기도를 마친 동생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언니, 나 치료 잘 받고 올게” 


3시가 되었다. 10분 20분 30분…. 치료 받고 있는지 묻기가 두려워 시계만 쳐다봤다. 그리고 3시 50분.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금 잘하고 있다고.   

  

“저 치료 잘 받을 수 있어요”


치과에 들어서자마자 했던 동생의 말은 자신을 향한 응원이었을 거다. 여전히 무서웠겠지만 용기를 내기 위한 응원. 치료실 의자에 앉기조차 두려워하던 동생은 두 달 만에 의자에 앉았다. 덜덜 떠는 동생의 손을 엄마가 옆에서 꼭 잡아주었다. 


드디어 동생이 치료 받았다. 올 한해 가장 행복했던 날을 꼽으라면 단연 오늘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를 끝낸 동생이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나와 통화 중이던 엄마에게 자신 있게 언니를 바꿔 달라고 한다. 전화기 너머로 간호사와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빠의 목소리도 살짝 들렸다.


“언니야, 하나도 안 아프다~ 나 치료 잘 받았다~ 언니야 나 대단하제?”

“그래, 성진아, 너무 대단하다! 성진이 이젠 치과 치료 잘 받을 수 있겠다~ 그치?”

“어 언니야, 나 잘할 수 있다”


아, 진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나. 치과 가기 하루 전, 긴장한 탓에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동생. 치료를 끝내고 얼마나 홀가분했던지 그제야 이것저것 먹는다. 어쩌면 동생 마음이 더 돌덩이 같았겠다. 맞다. 치과에서 그냥 돌아오던 날엔 집에 들어오기가 미안해 문 밖에서 쭈뼛거리던 동생이었다. 안절부절. 무서움. 어쩌지 못하는 그 마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날 저녁 동생에게 또 전화가 왔다. “언니야 나 치료 잘했다”라는 목소리가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날의 햇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