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를 울린 댓글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 로스쿨 다닐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_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대사 중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 지방 출장이 있어 한 시간 일찍 나왔더니 적당히 한산했고 여유 있었다. 환승역까지 가는 동안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고 환승역 출입문 앞에는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 명씩 줄을 서고 있었다. 보통은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기 마련인데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엄마와 아들이 보였다.
시선을 맞추지 않는 아들과 양손으로 아들 팔을 붙잡고 시선을 맞추려는 엄마. 20대로 보이는 아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것 같았다.
듣고 있던 음악이 끝났었나. 아니면 내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었나. 아이와 엄마를 쳐다볼 수 없어 둘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둘을 바라봤다.
“네. 조용히 할게요. 조용히 하세요.”
아들은 지하철 안에선 조용히 해야 한다며 주의를 줬을 엄마의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지하철이 도착했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탔고 손을 잡은 엄마와 아들도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그리고 노약자석 제일 끝자리에 아들을 앉혔다.
“조용히 하세요. 조용히 할게요.”
“알았어… 엄마가 잘못했어… 이제 그만하자…” 작게 속삭이는 엄마의 목소리는 어쩌자고 이렇게 선명하게 들리는지.
친구와 처음으로 컴퓨터 학원 갔던 날이 생각났다. 인터넷 창이란 걸 처음 열었을 때, 선생님 지도에 따라 더블 클릭했는데도 창이 열리지 않아 열릴 때까지 마우스를 클릭했던 날. 결국 몇십 개의 인터넷 창이 화면 가득 달려들었고 작업표시줄에서도 깜빡이는 주황빛 경고창에 울고 싶었던 날. 덕지덕지 열린 창을 어떻게 닫아야 할지 몰라 쩔쩔맸던 날. 그날의 내 마음이 애타는 엄마의 마음과 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그날이 떠올랐다.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 누구도 엄마와 아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괜찮아요.”라는 말을 말없이 하고 있는 그들 모두 봄날의 햇살 같았다. 두 정거장 뒤에 내리긴 했지만 5분 남짓한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지 나는 안다. 엄마와 아들이 지하철에서 내렸고 그제야 나는 그 둘을 바라봤다. 아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들리지 않을 응원을 보냈다.
내게도 지적장애 동생이 있다. 두 살 터울의 쌍둥이 여동생.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꼬박꼬박 교회 수련회를 보내던 엄마가 미웠다. 2박 3일 동안 동생은 손바닥에 박힌 가시 같았다. 동생 때문에 예민해졌고 혹시 웃음거리가 될까 봐 내내 부끄러웠다. 동생도, 교회 친구들도 모두 괜찮았는데 나만 괜찮지 않았다. 동생의 행동에 꺽꺽 웃던 친구도 있었다. 놀리던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는 지금처럼 그 웃음을 넉넉하게 받아줄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까불다가 유리컵 하나를 깨 먹고 눈치 보는 아이처럼 2박 3일 내내 불편했다. 혼자 어찌할 줄 모르던 내게 나보다 한 살 많은 교회 언니가 다가왔다. 2박 3일 동안 동생의 머리를 감겨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옷매무새를 만져주던 언니는 “언니니까 네가 동생을 챙겨야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언니 옆에서 부끄러움을 숨길 수 있었다. 그때 언니는 내게 봄날의 햇살 같았다.
나 대신 동생을 챙겨주던 교회 언니. 동생이 만든 샌드위치를 동생이 보는 앞에서 바로 베어 먹고 “와~ 맛있다! 잘 먹을게” 하며 복도를 걸어가던 중학교 선생님. 치과에서 4번이나 치료를 거부하고 돌아왔을 때 매번 동생의 손을 잡아주며 기다려준 의료진. 지하철 안에서 엄마와 아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던 사람들. 모두 봄날의 햇살 같았다.
얼굴도 이름도 연락처도 지나온 시간 속에 모두 잠겨버렸지만, 햇살은 언제나 비껴 들어와 그때와 지금을 밝혔다. 까맣게 잊히더라도 영영 사라지지 않는. 나도 누군가에게 봄날의 햇살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를 울린 댓글
조은희 학우님! 학우님 글을 읽으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요.... 제가 바로 그 지하철 속의 엄마랍니다. 제 아이는 25살 발달장애 아이지요. 제게는 아들 둘이 있는데 작은 아이가 장애가 있어요. 아이들 어렸을 때, 팔순 노모를 모시고 살던 터라 여름 성경학교에 형제를 보냈었는데 수녀님께서 나중에 알려 주시더라구요.
"동생을 챙기느라 형이 물놀이도 못하길래 내가 동생을 봐주고 형은 편하게 놀게 했다."
학우님 글을 보며 그렇게 동생에게 봄날의 햇살이 되고 있는 큰아들 생각이나서요. 이렇게 단숨에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조은희 학우님이야말로 봄날의 햇살보다 더 따스한 온기를 품은 모닥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세작교 에세이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에세이를 쓰고 동료들의 에세이에도 피드백을 남겨야 하는데 제 글에 달린 댓글을 보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혼자 식탁에 앉아 꺽꺽... 글이 뭔지... 이상하고 아름답고 묘하고 따뜻하고 뭉클하고 이상하고... 모르겠습니다... 댓글 내용은 동료분께 허락을 받고 올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