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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Dec 02. 2021

느그 엄마는 부엌데기다

22살 때였다.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값없다고 생각될 만큼 가볍고 웃기지만 그땐 참 아프고 힘들었다. 살면서 엄마에게 힘들다고 말해본 기억이 딱 한 번 있는데 바로 22살의 실연이었다.


지하철을 탔다. 가만히 앉아있는 게 힘들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딘가 아프면 몸을 움츠렸다가 폈다가, 이리 누웠다가 저리 누웠다가 하면서 통증을 견뎌내듯이 뭐라도 해야 덜 아플 것 같았다.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었다.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너무 힘들다는 말까지 했다. 엄마에게 처음으로 힘들다고 말한 게 남자친구랑 헤어져서라니. 너무 22살 답지 않은가.


“많이 힘드나⋯?”

엄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린다. 딸이 힘들다니까 엄마 마음도 좋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이 상황이 좀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엄마의 다음 말이 분명 그랬다.


“니가 차였나?”

“......?!”

슬퍼 죽겠는데 순간 마음이 괜찮아졌다. 아기를 낳아본 적은 없지만 한창 진통 오다 잠깐 멈춘 느낌이랄까? 엄마는 그 와중에 딸이 차였는지 안 차였는지가 궁금하다니. 예상치 못한 엄마의 질문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당황은 통증도 멈추게 하나 보다.

아무튼 이 일 후론 엄마에게 힘들다고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나도 참 어렸구나’ 싶다. 한창 삶이 고단했을 엄마에게 겨우 그 정도 일로 힘들다고 울었다니 내가 한심했다.


20살이 되면서부터 가족과 나의 거리 365km. 가는 데만 5시간. 떨어진 거리만큼 모르는 일도 많아졌다. 서로서로 배려하느라 힘든 일도 각자 알아서 견뎌 나갔다. 우린 서로 “괜찮다. 아무 일 없다. 잘 지낸다”는 말로 안부를 전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모른다. 나는 누구에게서든 몸 고생, 마음고생 하는 엄마 이야기만 듣는다는 것을.


혼자 지내면서 다 때려치우고 당장이라도 집에 내려가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집에 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괴로웠던 적도 많았다. 길을 걷다가도, 잠들지 못해서도, 울었던 날이 수두룩했다. 그렇지만 힘들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내 걱정까지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은 나누면 반이 되지 않더라. 당장 갈 수 없고, 당장 볼 수 없는 곳에서는 더욱 그랬다. 내 걱정, 내 걱정하는 엄마 걱정까지 되레 늘기만 했다. 엄마도 모를 리 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각자 별일 없는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몇 년 전 사촌의 결혼식이 끝나고 고모할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날 차 안에서 오랫동안 엄마 이야기를 나눴다. 고모할머니는 고생만 하며 살아온 엄마를 참 안쓰러워하셨다. 이렇게 한 번씩 듣는 엄마 이야기엔 괜찮고 잘 지내는 날은 없었다.


“느그 엄마는 부엌데기다⋯.”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꾸역꾸역 참았다가 집에 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엄마의 삶을 너무 적나라하게 들었다. 어쩜 그리 모진 말이 다 있을까. 그냥 아는 것과 경험해서 아는 것이 다르듯 부엌데기라는 말은 가슴을 쪼이듯 아프고 서러웠다. 그 말 한마디에 비로소 나는 엄마의 삶을 체험해버리고 말았다.


정말 그랬다. 엄마는 평생 부엌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칼국수 장사를 하시고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신다. 한동안은 외할아버지의 식사도 장사 중간마다 챙기셨다. 가족들 먹을 밑반찬에, 다음날 장사 준비에 종일 음식을 만드신다. 그것도 모자라 서울 사는 딸 먹일 반찬도 쉬는 틈에 하나씩 만드신다. 집안일, 마음 쓰는 일, 내가 모르는 일도 많을 것이다. 엄마가 아파 누웠을 때도 평생 반복해온 엄마의 하루다.


그날 잘 도착했는지 묻는 엄마의 전화에 또 서럽게 울고 말았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한테 반찬이나 보내 달라고 하고⋯.”

서러운 건 엄마일 텐데 꺽꺽 우는 딸을 위로하는 건 여전히 엄마였다.


“울지마라, 엄마는 괜찮다.”


여전히 엄마의 택배는 노크한다. 딸을 생각하는 마음만큼 무겁게도 꽉꽉 채우신다. 나는 엄마가 보낸 반찬을 조금도 남길 수가 없다. 엄마의 마음을 버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엄마!! 너~무 맛있잖아~”라고 말해준다. 엄마가 날 위해 반찬을 만드는 게 힘든 일 같아서 싫지만 그래도 가끔 오는 엄마의 택배엔 철딱서니 없는 딸이 된다.

엄마 걱정만 하며 지내는 딸은 엄마를 위한 일이 아닐 테니까.




생일날 보낸 엄마의 택배. 보이진 않지만 잡곡밥도 해서 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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