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빴던 점심 장사를 끝내고 순대 한 접시의 여유를 가지려던 엄마의 소박한 바람을 깬 건 동생이 사 온 다 터진 순대였다.
동생이 사 온 순대를 보자마자 엄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순대는 곧장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단지 잠깐의 휴식을 바라던 엄마에게 예고 없이 들이닥친 손님은 얄궂게도 엄마의 쉼을 훔쳐 갔다.
그날 동생이 돈을 주고 사 온 건 냉대였다. 그런데도 웃으며 “고맙습니다”하고 터진 순대를 받아왔을 동생이 눈에 훤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없이 살아갈 동생의 삶이 이럴까 싶어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내 마음도 이런 데 엄마 마음은 오죽했을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내 동생에게 한결같이 따뜻했었나. 동생은 빠르게 달아나는 시간 속에 키만 자랐다. 달아나는 시간을 따라가지 못해 여전히 어린 아이로 살아가는 동생을 가족인 나조차도 일방적으로 다그칠 때가 많았다. 그건 기다림이 필요한 동생에게 폭력이었다.
내 동생은 혼이 나도, 터진 순대를 받아와도, 미용실에 가서 사람이 올 때마다 순서가 밀려나 몇 시간을 기다리고만 있었을 때도, 엄마가 없을 때 동네 사람에게 이유 없는 윽박을 들어야 했을 때도 사람을 미워하거나 일러주는 법이 없었다. 매일 아침 직접 커피를 타서 장사 준비하시는 동네 분들에게 한 잔씩 드리며 재잘거리다 오는 사랑 그 자체인 존재다.
아침마다 겨우 출근 준비하는 나와는 달리 회사 가기 싫다고 짜증 한 번 낸 적 없으며 누군가 화낸다고 같이 화내는 법도 없다. 바라는 것 없이, 속이는 것 없이 언제나 깨끗한 마음 그대로를 보여주는 동생을 보며 진짜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비록 누군가에겐 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르나 언제나 내게 ‘나보다 낫다’는 깨달음을 주는 귀한 존재가 바로 내 동생이다.
그날 함께 있던 사촌 동생이 화가 나서 따지러 가려던 걸 엄마가 돌려세웠다. 동네 사람끼리 서로 얼굴 붉힐 것 없다며 됐다고 하셨단다. 엄마 옆에 있었으면 함께 씩씩거리며 화도 내고 다신 가지 말자고 괜한 으름장도 놔줬을 텐데. 나는 이 이야기를 한참 뒤에야 들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초라하고 아픈 일이다. 터진 순대를 받아온 그 날 동생을 보는 엄마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함께 울어주는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에 녹아든 진심 어린 누군가의 마음은 오래도록 엄마의 삶에 위로가 되었다.
“큰이모! 나중에 내가 결혼해도 영진이, 성진이 누나는 책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말이라도 고맙다”
사촌 동생이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정말 말이라도 고마웠다. 그런데 그 말이 실로 엄청난 힘으로 다가왔다.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무겁고 축축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보송보송한 솜털처럼 말라버리는 힘으로. 그 한마디는 나 혼자가 아니라는 응원이었고 걱정으로 꽉 찬 마음을 비워주는 홀가분함이었다.
어릴 때 나는 사촌 동생들을 미워했다. 내가 받아야 할 돌봄을 너무도 당연하게 양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 등은 거북이 등처럼 늘 막내 이모의 아이들이 업혀있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폐위된 왕이 된다더니 나는 쌍둥이 동생이 태어나자 외가로 보내졌고 그 이후에도 막내 이모의 아이들에게 계속 내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내가 엄마 품을 떠나 사는 동안 비어있는 내 자리를 채워준 건 다름 아닌 사촌 동생들이었다.
미워했던 마음이 부끄러웠다. 키워준 엄마의 수고를 간직해주는 그 마음이 더없이 고마웠다. 엄마가 힘든 게 싫어 이 사람 저 사람 마음 좋게 챙기는 것이 못마땅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힘든 삶 가운데서도 메마르지 않았던 엄마의 고운 마음씨는 어딘가에 머무르다 다시 엄마 옆으로 돌아왔다. 그 마음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동생 옆에서 따뜻하게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