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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되나 모르겠는데

에라 모르겠다

by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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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모르겠다. 허락도 없이 쓴다. 내가 응원하고 좋아하는 어떤 분을. 이분은 고수리 교수님의 에세이 수업에서 만났다. 이분이 던지는 질문에 고수리 교수님은 학우님은 질문이 정말 날카롭고 예리하시다며 놀라워하셨다.


어느 날 게시판에 그분이 글을 남기셨다. 꾸준히 써오셨던 흔적을. 글에 걸린 링크를 클릭하고 그분의 글을 읽었다.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이 그때부터 좋았다. 그분의 글은 내게 Writing Therapy 같았다. 잊고 살던 마음의 고향을 방문하는 기분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외가가 있던 거제도. 거제 조선소 옆 드넓은 바다 앞에 자리했던 어린 시절 잠시 머물던 내 고향. 외할머니는 오래전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그곳은 이제 폐가가 되었다. 하지만 내겐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긴 대나무 장대에 빨간 빨랫줄을 묶어 빨래를 걸어놓았던 마당. 깨와 빨간 고추가 바스락바스락 말라가던 그 마당. 대문도 없는 입구에 문지기처럼 박혀있던 커다란 절구. 바다에 떠다니는 온갖 것들을 주워 소꿉놀이하던 하나밖에 없는 내 놀이터. 굴뚝에선 밥 짓는 냄새가 구름처럼 모락모락 피어났던. 바다에서 내가 잡아 온 아기 꽃게는 외할머니 손에서 맛있는 반찬이 되어 은색 양은 밥상 위에 올라왔던 그 대청마루.


외가를 들어가려면 꼭 거쳐야 했던 통영. 내가 어릴 땐 충무였던 곳. 사랑과 닮은 통영 사량도에서 공중보건의사로 보내셨다는 작가님. 그 기록을 읽을 때면 나도 그리워졌다. 팔팔 끓는 콩나물국에 발을 데어 보건소까지 나를 업고 다니던 외할머니의 등이. 걸어서 30분 정도는 될 그 길을 매일 매일 업고 다니셨던.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 받을까 봐 작은 내 발에 할아버지의 양말을 신겨주던 외할머니의 사랑이.


뇌전증으로 수년간 약물치료를 받던 아이. 완치 판정.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고 진료실을 나가던 엄마. 접수대 앞에서 주저앉아 울었다던 엄마 이야기에 마음이 촉촉해졌다는 그 글에 나도 함께 울었다. 동생 이야기에 '같이 힘냅시다'라고 남겨주신 짧은 댓글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물회와 함흥냉면을 좋아하시는 분. 한 번도 배운 적 없다는 말이 혹시 뻥은 아닐까 의심되는 예쁜 엽서 같은 그림을 그리시는 분. 자연에 그저 카메라만 갖다 댔다던 멍해지는 사진을 찍으시는 분. 사라지는 것을 추억하고 산이든 바다든 미술관이든 어딘 가에 늘 머무르시는 분. 아들에게 존잘로 불리시는 분이지만 딸의 육아 이야기만 쓰시는(?) 분. 이 분의 글을 많은 분이 읽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중에 서동요 같은 역사 소설 저자가 되실지도. 소설가 김나정 교수님은 펀딩을 해야 할 정도라 하셨으니 난 이분이 쓴 역사소설을 꼭 읽고야 말고 싶다.


예술과 삶을 사랑하는 섬마을 의사 에세이스트. 이분의 소개가 곧 이분의 글이다. 그곳에 예술이 삶이 사랑이 섬마을이 의사가 에세이스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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