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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Sep 16. 2022

동생과 셋이 목욕탕에 간 날

 


초등학생 때였다. 엄마가 플라스틱 목욕 바구니에 샴푸, 린스, 비누, 바디 오일, 수건 등을 챙겨주시더니 동생을 데리고 목욕탕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엄마 손이 매워, 때 밀 때 힘들었는데 동생과 셋이 가라니. 때 안 밀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동생들을 데리고 나섰다.


목욕탕에 도착해서 쌍둥이 동생 것까지 옷장 열쇠 세 개를 내 손목에 찼다. 목욕탕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뿌연 습기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동생과 나는 한 가운데 있는 제일 큰 온탕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 둘, 세숫대야 하나, 바가지 하나를 챙겼다. 나는 온탕 테두리 의자에 앉았고 동생 둘은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동생을 한 명씩 비누로 씻겨줬다. 동생 한 명 비누칠해 주는 것도 힘들었는데 엄마는 딸 셋을 어떻게 다 씻겼을까. 목욕탕에선 엄마 얼굴이 잘 읽은 대봉 같았는데 탕 안의 열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로 대충 헹궈줬더니 동생들은 곧 온탕 냉탕을 오가며 놀았다. 그리고 나도 씻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나는 물을 한두 번 끼얹고는 바로 바디 오일을 발랐다. 물을 한번 끼얹었더니 몸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물을 다시 끼얹고 비누칠하고 다시 물로 헹구고 비누로 씻길 반복했다.


한 30분 아니 20분쯤 지났나. 목욕탕 안에 있는 게 답답했다. 냉탕에서 놀고 있던 동생을 데리고 와서 머리를 감겼다. 목욕탕 바구니에 샴푸, 린스, 비누, 바디 오일을 챙겼다. 의자와 세숫대야, 바가지도 물로 헹궈서 제자리에 갖다 두었다. 동생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는데 누군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아이고, 벌써 나가려고?”

“네, 다 씻었어요.”

“씻긴 뭘 다 씻어. 다들 이리 와보거라.”

생전 처음 보는 아주머니께서 동생과 나를 불러 한 명씩 때를 밀어주셨다. 결국 오늘도 때를 밀고 가는구나. 

“왜 너희끼리 왔어?”

“엄마가, 동생이랑 셋이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그랬구나, 그런데 이렇게 가면 엄마한테 혼나겠다. 아까 보니까 물만 묻히던데.”


그날 아주머니의 손이 매웠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다. 아주 잠깐 스친 만남이었고 그 후로 다시 본 적 없었지만, 아직도 문득 그날이 떠오른다. 물에 젖은 세 개의 수건에 목욕탕 바구니는 무거웠지만, 단지 우유라 불렀던 바나나 우유 쪽쪽 빨아 먹으며 동생과 집으로 돌아가던 길은 막 양치를 끝낸 아이처럼 개운했다. 


잠깐의 스침인데 오래 생각나는 만남이 있다. 좋은 기억으로도, 때론 잊지 못할 상처로도. 누군가의 어떤 시간 속에 머무른다면 자매 셋을 씻겨주던 아주머니처럼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랐다. 긴 시간 오래 했어도 어느 순간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렇겠지만. 그렇지만. 떠나고 떠나보내고, 잊고 잊히면서 살다가 문득 생각나는 어떤 날의 의미가 되고 싶다. 


“왜 이렇게 늦게 왔노?”

목욕탕에서 생각보다 오래 있다가 온 게 신기했는지 엄마가 물었다.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얘기했다.

“참 고맙네.”

엄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엄마 말처럼 정말 고마운 분이셨다. 


아주머니의 얼굴은 목욕탕에서 나온 순간 이미 까먹었지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만남이다. 동생과 나를 부르던 아주머니 목소리에서 지나쳐 온 많은 사람이 생각났다. 다가갈까 말까, 도울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멈추지 못하고 지나가던 나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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