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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으니 Sep 25. 2022

엄마가 엄마 엄마하고 울었다

출처_Pixabay



벌써 10년이 지났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살면서 엄마에게 가장 미안했던 순간. 나는 그날 서울에 있었다. 그때 엄마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팠다. 

늦은 밤이었다. 핸드폰 너머로 “엄마, 엄마”하고 우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니도 빨리 내려 온나.” 그리고 곧 전화가 끊겼다. 엄마가, “엄마, 엄마”하고 목 놓아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낯설었다. 그런 목소리가 처음이었다. 


엄마는 엄마를 잃은 날에도 딸만 생각했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도 바쁘면 얼른 올라가 보라고 했던 엄마였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없다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휑한 사무침인가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다. 그 감정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내 옆엔 여전히 엄마가 있어서였을까.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언제라도 통화할 수 없다는 것이, 집에 가도 엄마가 없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간간이 딸도 못 알아보고, 혼자 식사도 못 하실 때 외할머니를 뵈었다. 외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방글방글 웃으셨다. 너무나도 환하고 곱게. 외할머니의 표정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나라는 존재가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 은희다. 누군지 알겠나?”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소리 없이 웃으셨다.

“우리 엄마, 딸은 못 알아보고 은희는 알아보네.”

외할머니는 내가 나인 걸 알아보셨다. 고요하고 조용한 방안에 외할머니와 단둘이 남았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 준 흰죽을 숟가락으로 휘휘 젓고 작게 한 숟가락 떠서 후후 불었다. 그리고 외할머니 입에 넣어드렸다. 한 입 드시고 방긋, 또 한 입 드시고 방긋. 서로 마주 보고 방긋방긋 웃었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


쌍둥이 동생이 태어나고 여섯 살까지 거제 외가에 살았다. 외가를 떠나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늘 방학을 기다렸다. 엄마 아빠가 있는 집보다 외가가 더 좋았다. 방학이 되면 아주 오랫동안 외가에서 보내곤 했다.

외가에 있을 때 외할머니와 함께 자주 장을 보러 나갔다. 장을 보려면 버스를 타고 큰 시내로 나가야 했다. 바다 바로 앞에 있던 집에서 산 중턱에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적어도 20분은 걸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와 함께 걷던 구불구불한 길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커다란 개집에 진돗개 몇 마리가 컹컹 짖어도 무섭지 않았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이름 모를 꽃들이며 엄마 아빠가 다녔던 조그만 중학교, 과자와 학용품을 팔던 마을에 하나밖에 없던 문구점까지 지나서야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은희야, 저기 반대편에서 버스가 지나가면 곧 우리가 탈 버스도 도착한다.”

외할머니의 말이 엄청난 비밀처럼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버스가 왔다. 초록이 무성한 들판, 외할머니와 나 단둘만 있던 버스정류장은 정말이지 수채화 풍경에나 있을 법한 신기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금도 버스정류장을 지날 때면 외할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나에게도 외할머니는 이렇게 아련하고 애틋한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한동안 외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엄마가 없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살펴보지 않았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내 앞에서 울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엄마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엄마, 엄마”하고 우는 엄마의 눈물을 들었을 뿐이었다.


“엄마, 마트에 갔는데 우뭇가사리가 있는 거야. 외할머니 우뭇가사리 진짜 맛있었잖아. 콩물 사서 우뭇가사리 넣어서 먹었거든? 근데 옛날에 먹던 그 맛이 아니더라.”

“그래 맞다. 할머니 우뭇가사리 참 달고 맛있었다.”

그날 엄마 옆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대신 이렇게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나눌 뿐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엄마가 해주는 밥이 너무 먹고 싶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한 번 더 할 뿐이다. 나도 엄마에게 이 말들이 더 듣고 싶으니까. 미안하다는 말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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