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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Sep 30. 2017

그는 꼰대였습니까?

#서른을_넘긴_뒤에

이어폰을 낚아챘다. 스르륵. 이어폰이 귀에서 빠져나갔다. 다음은 손이었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던 손이 아래로 끌어내려졌다. 이어폰이, 스마트폰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강제로 밀려난 뒤에야, 누군가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도 바로 내 앞에서.

무척 짧은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엄습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이내 당황과 짜증이 몰려들었다. 스마트폰 액정을 보느라 아래 쪽에 고정돼 있던 두 눈에 불만이 차올랐다. 불만스런 눈빛을 한 채, 나는 떨궈져 있던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였다. 평균 신장에 못 미치는 나보다도 더 작은 할머니가 나를 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나 안 열리나 딱 보고 있어야지, 문 앞에서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


걱정이 잔뜩 담긴 목소리. 그의 말을 듣는데 짜증과 당황 사이로 얄궂은 가식이 끼어들었다. "네, 네..."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 손을 들어 올렸다. 할머니가 다시 한 번 나를 가로 막았다.


"나는 이렇게 보기만 해도 심장이 쿵쿵 하는데, 어쩌려고 그래. 문 딱 보고 서 있으라니까."


촌스러운 복장과 말투를 한 할머니와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아침 시간 지하철. 출근이라는 행위에 이미 지쳐버린 수십 개의 눈들에서 피곤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일종의 안도감이 배어 나왔다. 짜증을 내도 이해한다는 뜻이었을까.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나를 시선들이 옥죄는 것만 같아 더 얼어붙어 버렸다. 어떤 반응도 못하는 사이, 지하철은 플랫폼에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할머니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리고 문이 닫혔다. 지하철이 출발하면서 발생한 진동에 얼음이 깨졌다. 그제야 나와 문 사이 위치를 인지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내 이어폰을 낚아챈 순간부터 그때까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나와 지하철 문의 간격은 한 뼘. 나는 그 문과 직각으로 서서 의자 쪽으로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나름대로는 안전한 자세를 했다고 생각했다. 내심 억울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며칠이 지난 뒤에야 지인들에게 이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의 반응은 결이 같았다. 짜증 났겠네. 뭐야. 헐. 대박. 왜 그래... 주변은 할머니는 오지라퍼, 잔소리꾼이라 평가했다. 타인의 물건과 몸에 함부로 손을 댔고, 행동을 강요했다. 더구나 나는 제정신이었고, 내 몸을 잘 돌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나 역시 지인들과 같은 생각일 터였다. 그런데 대체 왜였을까.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되묻기를 멈추기 어려웠다. 나는 정말 잘못 없이 당하기만 한 걸까. 할머니의 말은 그저 잔소리, 불필요한 참견, 이른바 꼰대질이었던 걸까.


나는 여전히 이유를 모른다. 지하철 문 앞에서 노래를 들으며 게임을 하는 행위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꼰대라는 단어의 사회적 정의가 불분명한 탓인지,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 혹은 생각하기 귀찮은 탓인지.


모르는 것 투성이인 사이에서 그나마 명확해진 점이 단 하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아무한테나 꼰대라는 이름표를 붙여왔다는 사실을. 생각의 게으름으로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해왔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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