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형태
특별한 것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특별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 남다른 삶을 살거라 믿었다. 죽어도 평범해지진 않을거라 다짐했었다.
평범하다는 것은 흔한 것, 평범하다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것,
평범하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의미였다.
그때의 나에게 평범하다는 것은 모욕이었다.
- JTBC 드라마 <청춘시대> S01E04 / 윤진명의 대사 중에서
극찬을 받았던 드라마 <청춘시대>를 뒤늦게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시간 때우기 였으나, 어느새 나와 한구석씩 닮은 부분을 가진 캐릭터들에 빠져 들어 하루 만에 12개 에피소드를 다 보고 말았다. 대부분의 장면과 대사가 좋았지만,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 나가버린 어느 순간이 있었다. 때를 놓치지 않았다. 윤진명이란 캐릭터의 입에서 시작된 서늘한 바람이, 초라한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해 살짝 얹어두었던 얇은 천 조각 하나마저 날려버렸다.
언젠가부터 내게 생긴 이상한 증상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다. 손에 잡히지도, 눈으로 본 적도 없는 단어들의 모양새가 눈 앞에서 맴을 돌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이름도, 물체나 동물의 명칭도 아닌 추상적인 단어들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윤곽은 무엇보다 모가 났고 또렷했다.
윤진명의 대사에 수차례 등장하는 '평범'이라는 단어가 불러온 바람이었다. 일반-정상-보통이라는 낱말과 궤를 같이 하는 그저 '평범'한 단어지만, 이 낱말은 나에게 기묘한 증상을 선사했다.
모든 건 평범이라는 단어가 무너진 찰라에서 비롯되었다. 기억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는 그 장면. '우리 가족은 평범해. 보통 가족이야'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그 날, 그 시점에 단어의 외곽선이 출연했다.
여느 때와 같은 퇴근길, 버스에서는 라디오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이어폰 한 쪽이 고장났다는 것 뿐. 이 말인 즉 평소라면 들을 일 없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디제이의 멘트와 음악을 인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프로그램 오프닝이었을까. 진행자는 준비된 대본을 읽었다. 그 멘트는 곧, 빈 이어폰을 꽂은 왼쪽 귀를 따라 들려왔다. 따뜻하지만 특별히 더 감동적이기는 어려운, 식상한 문장들이 보통의 가족과 평범한 저녁 식탁을 호명하고 있었다. 불연듯 우리 가족의 식탁이 그 문장에 반응했다.
예상치 않은 순간 떠오른 우리 가족의 얼굴들은, 이내 덜컥해버렸다. 그리고는 산산이 부서져내렸다. 그제서야 나는 내 가족이 '보통'의 가족이 누리는 '평범'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 걸려 넘어지기도 어려운 작은 돌부리였고, 나는 잠시 비틀했을 뿐이었다. 내 움직임은 허우적이나 버둥거림이라기 보다는 흔들림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른바 평범-보통이라 불리는 상태는 그 정도의 미세한 충격에도 쉽사리 무너져 내렸다.
잔해들이 평범-보통-정상-일반이라는 말 타래의 윤곽을 그렸다. 좁고 얕은, 그저 길기만한 직육면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한 눈을 팔면 떨어져 버리고 마는 평균대, 그보다도 훨씬 좁은 입방체였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수십 개의 나무젓가락을 길게 연결한 모양인 듯도 보였다.
평범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 한 무더기를 모아놓고 공통점을 뽑아서 재구성해 낸 개념. 때문에 그 무리에 속한 누군가라면 예외 하나쯤은 지닐 수 밖에 없는 어떤 것.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단 하나의 예외라도 지니고 있다면 평범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어버리는 야박한 것. 결국은 예외를 지니고 있지 않은 극소수에게만 수여되는, 타이틀 뱃지 같은 그런 모양새 말이다.
앞서 인용한 윤진명의 대사는 그래서 이렇게 이어졌나 보다. 내가 경험한 현실이 나만의 예외적인 세상이 아니라는 듯.
죽을만큼 노력해서 평범해 질거야.
나는 지금 평범 이하다.
- <청춘시대> 윤진명의 대사 중에서
평균대에서 떨어져 그렇게 버둥거리고 있을 때, 나는 '시시하다'는 단어와 만났다. 평범과 보통, 일반이라는 어휘와 어찌보면 한 묶음일 수도 있는, 속좁은 이 단어의 무리들을 설명하는데 자주 동원되는 그런 단어. 시시하다에 대한 나의 첫 생각은 그러했다.
허나 줄곳 어울려 다니면서도, 시시함의 모양새는 앞선 '보통'의 무리들과 같지 않았다. 폭은 넓었고 품 또한 깊었다. 수많은 것들이 그 안에 이미 담겨 있었음에도 또다른 무엇을 잔뜩 수용할 수 있도록 잔여 공간도 충분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윤진명이 평범을 위해 죽을만큼 노력한다면, 나는 그냥 시시하게 살기로 말이다. 떨어질까 두려워, 벗어날까 무서워 매순간 벌벌 떨기보다는 그냥 처음부터 시시하기로 말이다. 평범과 보통, 일반에서는 탈락했을지언정, 시시함을 그들과 공유할 수 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일상은 원래 시시한 것들 투성이다. 시시하기 그지 없는 보통의 영화와 평범한 농담, 일반적인 시각. 눈에 띄는 몇몇을 제외한 시시한 사람들. 시시함이라는 단어의 안에서 올려다보니, 이제 보통도 평범도 정상도 일반도 더이상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 보였다. 시시함을 채우는 그냥 한 줄기 정도랄까.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단어에 가로-세로-높이가 있다면, 당신이 사랑하는 그 단어는 어떤 모습이냐고.
부디 시시함의 윤곽을 나만큼 거대하게 상상하는 이들이 많기를,
시시함에서 평범과 다른 안식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