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에게 보내는 너무 늦은 사과 #.01
얼마 전 주말 아침, 울면서 잠을 깼다. 꿈속의 울음이 현실로 이어진 일이 이번으로 고작 두 번째여서 감정을 컨트롤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가슴에서 자꾸 꺼억꺼억하는 소리가 올라왔다.
꿈에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지금은 이곳에 없는 그녀가 있었다. 1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으나 나는 어김없이 내 일을 하느라 바빴다.
일을 끝마친 뒤에야 그녀와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했다. 그녀는 이미 밖으로 나가,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뒤를 쫓으며, 그녀를 부르려 팔을 허우적댔다.
그녀는 끝내 뒤돌아 보지 않고 그대로 버스에 올랐다.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으나, 그녀는 그대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어떠한 기색도 없던 그 눈, 그 차가운 반응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대로변의 버스정류장이라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주저앉아 끄억끄억 소리까지 내며 울 수밖에 없었다.
설움에 북받쳐 울다 보니 호흡이 가빠왔다. 그렇게 잠에서 깼다. 꽤나 몸부림을 친 모양인지 이부자리가 엉망이었다.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도 잠시 뿐, 눈물이 계속 흘렀다.
누워 있는 게 버거워 몸을 일으켰다. 베개를 안고 한참을 앉아 있었지만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옆방으로 옮겨가 곤히 자고 있는 동생 곁에 누웠다. 체온이 느껴지자 또다시 감정이 요동쳤다.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는지 한창 자고 있던 동생이 뒤척였다. 나는 '손'이라는, 그 한 글자를 겨우 뱉었다. 동생은 잠결에 왼손을 내주었다. 그 손을 붙잡고 또 한참을 흐느끼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배고파, 밥 먹자. 동생의 칭얼거림에 잠에서 깨니 오전 11시가 지나 있었다. 갑자기 왜, 자신의 방에서 잤는지 동생은 물었다. 그대로 말했다가는 다시 눈물이 솟구칠 것 같았다. 꿈꾸다 울었는데 진정이 안 되어서 그랬다고, 꿈은 기억이 안 난다고 둘러댔다. 말을 보탤 겨를을 주지 않으려 가벼운 타박을 보탰다. 네 옆에서 울었는데 몰랐느냐고. 전혀 몰랐다고, 동생은 자신이 손을 준 것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황을 모면하고자 무심결에 뱉은 문장 끝에 내가 맺혔다. 힘겹게 요청한 도움, 나의 간절함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는 데서 기인한 어떤 감정. 설움 혹은 슬픔이라 부르기엔 너무 많이 넘치는, 채 명명하지도 못할 그 감정을 그녀도 느꼈으리라. 죄책감이 몰려왔다.
무려 15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막 서른둘이 되었을 때까지.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의 최소 1/4 이상을 함께 했다. 떨어져 있는 시간마저도 전화, 문자, 메신저, 카톡 등 온갖 방법으로 일상의 모든 일들을 공유했다.
자신의 병명을 처음 확인했던 그 순간, 그녀는 나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병세가 악화돼 밥 반 공기도 먹지 못했던 날들 중에도, 문득 맛있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졌노라고 알려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누구보다 확신에 차서 답했다. 알았노라고, 내가 곧 가겠다고.
말뿐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 걸려 줄곧 넘어졌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건 거짓이 아니었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철야도 주말 근무도 많았다. 매일이 수면 부족이라, 주말이면 부족한 잠을 조금이라도 보충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누워 있었다. 그런 나를 너무 잘 아는 친구였기에, 단 한 번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찾아가지 못한 주말이 쌓여갔지만, 그녀는 '괜찮다'며 항상 나를 위로했다.
나의 잠깐이 그녀에게 너무 길었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나와 만나는 일이 도리어 그녀를 더 힘들게 할지 모른다고 변명을 창조해 자위했다. 나는 이불속에서 꾸무적대고, 시간을 쪼개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그녀를 미뤘다.
그녀의 이름과 함께 '화장 진행 중' 이라는 문구가 흘렀던 전광판, 그걸 마주하고야 알았다. 나는 나의 일이 누군가를 위한 혹은 우리 사회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몽땅 희생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조금 더 자는 일이,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는 것이, 희생에 대한 보상이자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이라 여겼다. 곧 타인에게 무엇인가로 돌아갈 것이라 믿으면서.
그건 고작 자기연민일 뿐이었다. 대의는 둘러대기 좋은 핑계일 뿐, 나는 가장 아끼는 사람조차 돌보지 못했다.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병문안 한 번 제대로 가지도 않으면서,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해 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 취해있었다.
희생? 그건 이기적인 나를 감당하는, 그녀를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할당된 몫이었다. 나의 가장 큰 죄는, 내 욕망에 빠져 내가 하고픈 일만을 하는 나를 너무 뒤늦게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그 꿈속의 나는 그래서 진짜 나였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업무 중이라며 인사 한 번 하지 않고, 쫓아가면서 이름조차 한 번 부르지 않은 그 모습은 과거의 재연이었다.
차가움에 주저앉아버린 심장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그녀가 맞았다. 그래서 내겐 눈물을 흘릴 자격 따윈 없다. 나는 기억해야만 한다. 그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고 괜찮은 인생을 살았는지, 그녀 덕에 내가 얼마나 즐거운 기억을 가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1985년 4월 23일에 태어나 2016년 11월 15일까지 만 31년을 조금 넘게 살다 간 내 유일한 친구, 박지현.
너무나도 소중했던 너를, 나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솔직히 걱정돼. 널 벌써 잊었을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