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에 부쳐
#1.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를 좋아하게 된 건, 단 한 줄의 대사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아해도 거의 다시 보지 않고, 기억력도 꽝이지만) 그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설명하자면 대충 이렇다.
판사인 정보왕(류덕환 역)과 속기 실무관인 이도연(이엘리야)이 우여곡절 끝에 연인이 되었다. 어느 날인가 정보왕은 이도연을 그녀가 혼자 사는 집까지 데려다주었는데, 이도연이 정보왕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먼저 제안을 한다. 명백한 유혹. 오랫동안 이도연을 짝사랑해왔던 정보왕은 너무 놀라서 그만 얼어버렸다. 그러자 이도연이 웃으며 말한다.
“이 남자가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면 여자도 용기를 내거든요.”(정확도 0.00001%)
#2. 코로나19 상황임에도 최근 나는 갑갑증을 이기지 못해 자꾸 동쪽으로, 남쪽으로 떠났다. 좋아하는, 꽤 익숙한 장소들이었지만, 다녀온 뒤에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여행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그동안 나는 완전히 겁쟁이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여행도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20대 초반부터니까 10년을 훌쩍 넘게, 나는 ‘혼자 여행’을 즐겼다. 22살 때였던가. 내장 기관(ex. 대장, 방광, 자궁 등) 사정까지 공유하는 친구와 함께 한 달 남짓 여행을 했다. 우리의 여행은 전쟁 발발 직전에 종료됐다. 내 생활 리듬은 너무 불규칙했고, 맛집에는 관심이 ‘1도’ 없었다. 위기를 경험한 이후, 나는 일정도 식사도 내 기준대로 하기 위해 ‘혼자 여행’을 시작했다. 그것은 나와 무척이나 잘 맞았는데,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길을 잃는 것조차도 즐거웠다. 주변 사람들은 위험하다며 걱정했지만, 올레길도 혼자 저벅저벅 잘 걸었다. 가끔은 (운전자와 탑승자가 남성뿐인) 차를 얻어 타기도 했다. 그렇게 무사한 날들이, 경험들이 추가될수록 내 여행은 점점 더 풍요로워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달라졌다. 여행 중에는 SNS에 나의 위치가 특정될 만한 사진이나 정보를 절대 남기지 않았다. 여행 중이라는 것조차 티 내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훨씬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좁은 길을 피하고 대로변 갓길을 따라 걸었다. 더 방황하고, 들여다보고 싶어도 해가 지기 전에 무조건 숙소로 돌아갔다.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음식과 술들로, 숙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재미와 모험보다는 예측 가능함과 통제 가능함이 점점 더 우위를 차지했다.
그러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지역 주민이 청해온 대화까지 원천 차단해버리고야 말았다. 단지 식사 메뉴를 추천해주려는 의도였는데 나는 지레 겁을 먹어버렸다. 혼자냐는 질문에 고개부터 숙이고, 입을 닫았다. 내 속을 아는지... 그분은 끝까지 메뉴를 추천해주셨고, 곧바로 일행과 함께 자리를 떴다. 겁쟁이일 뿐만 아니라 불친절하고 무례하기까지 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3. 박원순의 죽음 이후 지난 2주 동안 ‘미스 함무라비’의 대사와 초겁쟁이가 된 나를 번갈아,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죽음과 분노는 사라지고, 참담함만이 남는다. 그 시간 동안 대한민국 사회가 보여준 압도적인 위력과 쏟아져내린 2차 가해들. 아무리 피하려 애를 써도 나는 한계치 이상으로 그것들에 노출됐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 안에서는 절망이 자꾸 웃자란다.(내가 느끼는 참담함이 이 정도라면 피해자는 과연 어떨지... 피해자 분의 건강과 안전을 간절히 기원한다)
당신들은 말한다. 속옷 수발을 시키는 것은 성희롱이 아니라 아무리 좋게 봐줘도 성차별, 직장 갑질일 뿐이라고. 속옷만 입은 사진을 계속 보낸 것도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인데 오해한 거라고. 정말 그런가? 정말 아무 일도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의 말은 최소한, 내게 이렇게 이해된다.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해도, 도움을 줄 사람은 거의 없겠구나. 내가 느끼는 이 불안은 모두 나의 예민함 탓이니, 내가 조심할 수밖에 없구나.
#4. 믿을만하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이 가장 앞줄에 서 있다. 그들에게 정말 묻고 싶다.
나는, 여성들은, 그리고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 이 곳에서 용기를 내도 되는 거냐고.
미지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을 이겨내면,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이 사회는 안전하냐고.
내가 위험에 빠진다면, 당신은 내 곁에 서줄 것이냐고.
그래서
나는 다시 예전처럼 여행을 떠나도 괜찮은 거냐고. 꼭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