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비가 추적추적 온다. 방금 전까지 자기소개서 하나를 어렵사리 끝냈다. 그때는 그렇게도 안 써지던 글이 브런치만 켜면 이렇게 술술 나오는 것도 참 신기하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자주 그렇듯이 8시에 일어나려고 하다가 11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보고는 슬퍼졌지만 이미 늦었는데 웬 바보 같은 감정 낭비람. 컴퓨터를 켜고 자소서를 쓴다. 정말 드럽게도 할 말이 없다. 내가 이렇게밖에 못 살았나.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사회생활에 적극적이지 않은 게 취업할 때는 큰 독이 되는 것 같다. 머리를 쓰다 보니 배가 고프다.
라면을 먹어볼까? 하다가 최근 일주일간 라면을 두 번이나 먹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래, 몸에 좋지도 않은 거 먹지 말자. 하고 집에 있는 밥 뚜껑을 연다. 지은 지 오래된 밥이 딱딱하게 말라붙어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된장 찌개가 있다. 쓱싹쓱싹 밥 비벼 먹으면 맛있겠다. 그리고 이런 건 또 커다란 양푼에 먹어야지. 된장찌개와 밥이 든 양푼을 들고 TV 앞으로 향한다.
오늘은 뭘 보면서 먹을까? 새로 나온 프로 중에 딱히 볼 만한 게 없다. 이럴 때는 역시 냉장고를 부탁해 레전드 편이지. 몇 번이나 봤지만 밥 먹을 때 보면 왠지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마성의 프로다.
그렇게 밥을 먹고 의자에 기대 있다 보니 눕고 싶어 진다. 그래서 누웠다. 또 누워 있다 보니, 잠이 온다.
이불도 베개도 없이 잠이 든다. 엄마가 늘 이렇게 밤에 잠이 드는 거구나, TV까지 켜져 있으니까 덜 외로운 것 같다. 자소서 써야 하는데, 하면서 쿨쿨 잘도 잔다. 백수가 이 정도는 누릴 수 있는 거잖아.
결국 세시 반까지 한 일이라고는 자소서 몇 자 쓴 게 전부다. 진정한 백수의 하루답다. 순간 이러다가 히키코모리로 전락하는 거 아냐?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파오후우우........
안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오늘은 소개받은 직장에 자소서를 보낸다. 아직 공고도 뜨기 전인데, 일단 자소서를 먼저 보내라고 한다. 정말 한국은 인맥 사회구나. 이제는 첫 직장에 어떻게 취업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혹시 괜히 퇴사한 거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애써 떨쳐낸다. 아직 그만둔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 자책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아참, 오늘 서류 발표 하나 난다고 했었는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발표자 명단이 떴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명단을 클릭했으나 내 이름은 없다. 에이, 어차피 안 가려고 했었다 뭐.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쓰다. 생은 고다. 비도 오는데 오늘 저녁에는 소주나 한 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