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과인간 Nov 16. 2015

11월 16일 백수의 하루

 오늘도 비가 추적추적 온다. 방금 전까지 자기소개서 하나를 어렵사리 끝냈다.  그때는 그렇게도 안 써지던 글이 브런치만 켜면 이렇게 술술 나오는 것도 참 신기하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자주 그렇듯이 8시에 일어나려고 하다가 11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보고는 슬퍼졌지만 이미 늦었는데 웬 바보 같은 감정 낭비람. 컴퓨터를 켜고 자소서를 쓴다. 정말 드럽게도 할 말이 없다. 내가 이렇게밖에 못 살았나.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사회생활에 적극적이지 않은 게 취업할 때는 큰 독이 되는 것 같다. 머리를 쓰다 보니 배가 고프다. 


 라면을 먹어볼까? 하다가 최근 일주일간 라면을 두 번이나 먹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래, 몸에 좋지도 않은 거 먹지 말자. 하고 집에 있는 밥 뚜껑을 연다. 지은 지 오래된 밥이 딱딱하게 말라붙어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된장 찌개가 있다. 쓱싹쓱싹 밥 비벼 먹으면 맛있겠다. 그리고 이런 건 또 커다란 양푼에 먹어야지. 된장찌개와 밥이 든 양푼을 들고 TV 앞으로 향한다. 


 오늘은 뭘 보면서 먹을까? 새로 나온 프로 중에 딱히 볼 만한 게 없다. 이럴 때는 역시 냉장고를 부탁해 레전드 편이지. 몇 번이나 봤지만 밥 먹을 때 보면 왠지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마성의 프로다.


 그렇게 밥을 먹고 의자에 기대 있다 보니 눕고 싶어 진다. 그래서 누웠다. 또 누워 있다 보니, 잠이 온다.


 이불도 베개도 없이 잠이 든다. 엄마가 늘 이렇게 밤에 잠이 드는 거구나, TV까지 켜져 있으니까 덜 외로운 것 같다. 자소서 써야 하는데, 하면서 쿨쿨 잘도 잔다. 백수가 이 정도는 누릴 수 있는 거잖아.


 결국 세시 반까지 한 일이라고는 자소서 몇 자 쓴 게 전부다. 진정한 백수의 하루답다. 순간 이러다가 히키코모리로 전락하는 거 아냐?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파오후우우........


 안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오늘은 소개받은 직장에 자소서를 보낸다. 아직 공고도 뜨기 전인데, 일단 자소서를 먼저 보내라고 한다. 정말 한국은 인맥 사회구나. 이제는 첫 직장에 어떻게 취업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혹시 괜히 퇴사한 거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애써 떨쳐낸다. 아직 그만둔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 자책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아참, 오늘 서류 발표 하나 난다고 했었는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발표자 명단이 떴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명단을 클릭했으나 내 이름은 없다. 에이, 어차피 안 가려고 했었다  뭐.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쓰다. 생은 고다. 비도 오는데 오늘 저녁에는 소주나 한 잔 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