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과인간 Feb 25. 2018

서른이 되며 길을 잃다

스물아홉 12월, 서른을 코앞에 두고 깨달았던 사실은 나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거 없는 평범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줄 알았던 나의 취향은 사실 상황에 따라 순간순간 받았던 인상이 뒤죽박죽 섞인 것에 불과했고, 나답게 살기 위해 열심히 개척했다고 생각했던 인생 루트 또한 돌아보니 남들과 다를 것 없었다. 이것만큼은 내가 최고지, 할 만큼 특별하게 잘하는 것 없이 어느 정도 먹고살 만큼의 능력만 가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이 앞자리가 바뀌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군, 정도의 마음이었다. 자신에게 의미 부여할 게 없으니 삶이 조금 시시해 보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30대가 되면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서른이 된 지 어느새 두 달.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20대에게는 면죄부가 있다. 원래 그 시기는 그렇게 방황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힘든 시기라는 관념이 보호막 역할을 해 준다. 하지만 30대는 이제 방황 따위 마치고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은 시기이다. 실제로 주위 친구들은 하나둘 차를 사거나 결혼을 한다. 내가 당장 차를 사고 싶은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안정을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게 느껴진다. 모두 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할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그들은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결혼을 해야 할지, 한다면 어떤 사람과 어느 정도 나이에 하는 것이 좋을지. 이 직업은 과연 나에게 잘 맞는지, 이 직장은 얼마나 다닐 수 있을지. 아무것도 확신이 없다. 어쩌면 이런 고민을 할 시기는 지나버렸는데도 바보같이 계속 고민만 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십 대의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내가, 서른이라는 이유로 안정된 삶을 꾸려야만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많은 책에서 말한다. 너만의 속도로 가라고.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 아직도 내 마음은 이렇게 길을 잃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다들 나를 지나쳐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다. 모두들 앞서 나가는데, 나 혼자 나만의 속도로 가다가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는 그런 때가 올까 봐 두렵다. 아니, 속도가 느린 건 둘째치고 제대로 된 길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무섭게 느껴진다. 언제쯤 눈앞에 길이 보이게 될까. 아니, 보이는 때가 오기나 하는 걸까.


생각보다, 서른은 쉽지 않은 나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