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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Mar 04. 2016

술과 나

 언제부터 술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예전에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술을 너무 사랑해서 자주 같이 마신 탓인지, 나의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훨씬 편하게 만들어주는 술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취해서 나라는 인간을 벗어버릴 수 있어서인지, 그냥 맛이 좋았던건지,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먹다 보니 나도 모르게 중독이 된 건지.


 다만 이제는 술이 좋지만은 않은 친구라는 사실을 느낀다. 맛으로 먹는 한잔 두잔은 여전히 나쁘지 않지만, 술을 먹고 다른 내가 되어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은 나름 평탄했던 내 인생을 아프게 만들고 여러 인연들과도 멀어지게 했다.


 게다가 술에는 또 한 가지 안 좋은 기능이 있다. 먹고 나면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 지금처럼 시간에 쫒기며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보니 술 마실 시간이 없다. 이건 정말 술을 먹는 한두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술을 먹고 난 이후 잠들기까지의 몽롱한 너덧 시간이 아깝다는 뜻이다. 술은 다른 놀잇거리와 달라서 마시는 순간만 나를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깨기까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러니 매일 술을 먹어서는 열심히 무언가 해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이걸 지금 와서야 깨닫다니 나도 참, 대학 입학 이후로는 대강 살았나보다 싶다. 그전까지는 이렇게 시간을 아껴가며 뭔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하지만 지금에라도 알았다는 건, 어쨌든 내가 지금 나름 노력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나를 나무라지만은 않고 나름 칭찬도 해 주련다.


 어쨌든 이렇게 술이 가진 단점이 많을지라도,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좋은 사람과 주고받는 대화는 내가 살아있는 순간이자 인생을 윤택하게 해주는 윤활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술과 나는 지금까지처럼 자주 만나고 낄낄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친구는 될 수 없겠지만, 가끔 만날때마다 서로를 응원해주는 더 좋은 친구로 한단계 발돋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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