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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Mar 04. 2016

취향저격

  이십 대 초반까지는, "예쁨"이 객관적인 건 줄 알았다. 누가 봐도 예뻐야 예쁜 거고, 이마를 드러내고 예쁘면 더 예쁜 거고, 청순하게 예쁘면 섹시하게 예쁜 것보다 더 예쁜 거고.... 하지만 나이를 먹으니 이제야 "예쁨"의 실체를 알게 된 것 같다. "예쁨"이란 곧 "취향"이다.


  물론 정말 지나치게 예쁘면, 취향이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김태희 같은 미모랄까? 하지만 누군가는 김태희에게조차도 "객관적으로 예쁘긴 한데, 내 취향이 아니라 내 눈에는 그다지 안 예뻐."라고 할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라는 말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생각한다, 혹은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에 부합한다, 정도 되겠지.) 당장 TV만 틀어도 예쁜 사람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다 다르게 예쁘다. 우리나라 대표 미인인 손예진, 송혜교, 전지현조차 다르다. 설현, 아이유, 현아, 태연, 윤아는 더 다르다. 물론 사람들이 "예쁘다"라고 느끼는 이미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꼭 거기에 부합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취향이란 다 다른 거고, 적어도 한 명의 취향에 맞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게 예쁜 거니까.


  예를 들어, 누군가의 이상형이 박보영처럼 귀여운 포켓걸이라면 아무리 잘빠진 데다가 청순한 전지현을 데려와도 그의 마음을 흔들기 어려울지 모른다. 반대로 전지현이 이상형인 남자에게 박보영은 큰 매력이 없는 여자일 것이다.


  이렇게 각자 생각하는 "예쁨"이 다르다면, 결국 각자 추구해야 하는 "예쁨"이란 무엇일까? 보통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예쁨을 객관적인 예쁨이라 믿고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썩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한다. 인간은 각기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매력적이고, 결국 사람들은 (특히 남녀는) 그 다름에 끌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고난 외형은 이미 정해져 있다. 여기서 "객관적"이라는 예쁨을 추구하려다 보면 결국 성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성형이 잘 된다면야 큰 문제없이 미인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설프게 고치다 안 고치느니만 못한 경우도 수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각자 자기 취향의 "예쁨"을 추구하길 바란다. 이래야 가장 실패 확률이 낮다. 비록 그 취향이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한 사람은 만족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바로 나다. 이렇게 내가 내 취향이 되면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 사실 자체로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내 취향의 예쁨을 추구하면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장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또한 남들 눈에도 예뻐 보일 수 있는 플러스 요인이 된다. 혹시라도 남들이 나를 안 예쁘다고 생각 한들 어떠랴. 내 눈에 내가 예쁜데.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게다가 이 세상에는 인구수만큼의 취향이 있다. 그중 한 명 정도는 내가 취향이지 않을까.


  하지만 만약 마음에 둔 사람이 추구하는 "예쁨"이 어떤 종류인지 확실하다면, 딜레마가 시작된다. 당장 나조차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누굴 탓하리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다운 나, 내 취향의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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