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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Oct 24. 2020

드라마 정주행, 책장과 옷장 정리를 위해 필요한 것

#백수일기 5, 6일차_2020년 10월 24일

  어제와 오늘은 진정한 백수의 하루를 보냈다. 드라마 한 편을 정주행 한 것이다. 딱히 한 일들이 없어서 한 편으로 묶었다. 정말 소소한 일기가 되겠지만 그래도 기록해 두려고 한다.                


  어제는 친구와 유명한 망원동의 텐동 맛집 <이치젠>에서 일찍부터 대기를 해서 맛있는 점심 한 끼를 먹었다. 회사 점심시간인 12시가 아니라, 11시든 1시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자유가 다시금 좋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싫었던 점이 내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거였으니까. 기다릴 가치가 있는 텐동 맛은 끝내줬다. 친구와 커피까지 한잔하고 헤어진 후, 날씨가 좋길래 도마뱀 두 마리를 데리고 홍대 파충류 샵으로 향했다.               


  나는 크레스티드 게코라는 종류의 도마뱀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각각 암, 수로 이름은 데저트헌터(헌터)와 초코마그마(초마)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도마뱀들인데 이름이 거창해서 아이들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조금 부끄럽다. 이 녀석들의 주식은 과일과 곤충(귀뚜라미)인데, 내가 곤충은 절대 못 만지는 쫄보라 집에서는 과일만 먹이고 있다. 과일만 줘도 문제없는 종이라고 해서 키우게 되기는 했지만, 곤충도 주는 게 영양학적으로 좋을 것 같아 가끔 직접 파충류 샵에 데려가서 사장님께 먹이 급여를 부탁드리고 있다.     


  오랜만에 뱀뱀이들 외식도 시킬 겸, 바람도 쐴 겸, 전동 킥보드를 타고 홍대로 갔다. 어느새 바람이 많이 차가워져서 손이 시리게 느껴졌다. 아직 덜 추울 때 좋은 날씨를 더 즐겨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파충류 샵 앞에 도착했는데 이런!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다. 택배 온 귀뚜라미들만 가게 문 앞에서 귀뚤귀뚤 울고 있었다. 거의 연중무휴로 열려 있는 곳인데... 사장님께 연락을 드리자 오늘은 개인 사정으로 늦게 나오신단다. 뱀뱀이들이 밖으로 나오면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기껏 데리고 나와서는 외식도 못 시켜 준 게 너무 아쉬웠다. 홍대까지 나온 김에 프라이탁 매장에 잠깐 들렀다가 아이들이 추울까 봐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프라이탁은 대체 왜 이렇게 비싼 거냐! 맨날 군침만 흘리고 돌아간다)


  저녁을 먹으며 뭘 볼까 넷플릭스를 요리조리 찾아보니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눈에 띄었다. 일을 하면서는 마음도, 시간도 여유가 없어서인지 16부작 드라마 한 편을 보기 시작하기가 참 어려웠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정주행을 해야 하는 성격 탓도 있었지만. 이제는 마음도,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 드라마를 한번 틀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이틀 만에 정주행을 거의 다 마치고 대망의 마지막 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지만, 사랑 얘기보다도 주인공이 짠해서 괜히 계속 보게 되는 드라마였다. 주인공이 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일반적으로 드라마들이 뒤로 가면서 내용이 엉성해지거나 속도감이 떨어지는 반면 이 드라마는 쫀쫀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만화적 과장들이 다소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자칫 너무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필요한 요소다.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는 일단 꽤 괜찮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드라마를 보느라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오늘 아침에는 책장 정와 옷장 정리도 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받은 새 책들을 책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었고, 이미 본 책들 중 다시 안 펴볼 것 같은 책들은 꺼내서 침대 밑에 넣어두었다. 그러면서 침대 밑에서 겨울옷을 (드디어) 꺼내 옷방에 넣고 여름옷들은 침대 밑으로 넣었다. 정리하는 데 두 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시간으로 따지면 길지도 않다.


  그렇지만 뭔가를 정리한다는 건 막상 해놓고 보면 별 거 아니라도 하기 전에는 아주 하기 싫은 법이다. 그래서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어렵지 않게 두 가지를 해치우고 나니 괜히 뿌듯했다. 정말 별것도 아닌데 회사를 다닐 때는 드라마 보기, 책장 정리, 옷장 정리 같은 일들이 왜 이렇게 큰일로 느껴져 계속 미루기만 했는지.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갈 수 있다는 소소한 여유가 좋다.    


  어제는 그다지 한 일이 없어서 일기를 안 썼는데, 오늘까지 안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드라마 마지막 회는 일기를 다 쓰고 보려고 남겨두었다. 이제 일기를 마무리하고, 마지막 회를 보러 가야겠다. 드라마 정주행과 책장, 옷장 정리를 아무렇지 않게 끝낼 수 있는 여유를 즐기며. 부디 짠한 주인공이 행복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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