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27일차_2020년 11월 15일
이상하게 쓸쓸하고 외로운 날이다. 일주일에 6일은 점심이든 저녁이든 약속이 있고, 오늘은 하루 종일 남자친구를 만났는데도 그렇다. 저녁을 먹고 남자친구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자 갑자기 허기가 몰려와서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저녁을 먹었으니 이 배고픔은 가짜 배고픔일 것이고, 아마도 정신의 어떤 부분의 결핍을 먹을 걸로 손쉽게 채우고 싶다는 신호인 것 같다. 4일 후에 예정되어 있는 프로필 사진 촬영이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피자에 맥주를 먹어버렸을 것이다.
퇴사한 지 어느새 한 달 정도가 흘렀다. 회사를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지난 한 달의 나를 돌아보면, 이도 저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든다. 제대로 쉰 것도 아니고, 제대로 논 것도 아니고, 제대로 뭔가 한 것도 아니다. 마음 편하지 않은 채로 찔끔찔끔 이것저것 했을 뿐이다. 아마도 내가 퇴사가 아니라 회사에서 허락하는 한 달 휴직을 했다면 이런 시간을 보냈겠지. 한 달이 지난 후에 시간을 제대로 못 썼다며 후회했을 것이다. 많이 고민했지만, 그런 면에서는 역시 휴직이 아니라 퇴사를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지 않을 핑계는 너무 많다. 그렇다고 정말로 안 쓰자니 마음이 갑갑하다. 다이어트도 그렇다. 살 빼고 싶은데 맛있는 것도 먹고 싶다. 쉬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 생각 없이 확 쉬자니 시간이 아까운 것 같고, 안 쉬고 열심히 하자니 쉬고 싶다. 뭐 하나 똑 부러지게 하지를 못하는 내가 바보 같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씩,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매일 폭풍 글쓰기를 하지는 못하지만 매일 조금씩 써 나가서 결국 완성하면 되는 거고, 다이어트도 서서히 적게 먹어서 지금보다 빼면 되는 거고. 쉬는 것도 몰아서가 아니라 체력을 충전할 만큼 매일 나누어 쉬면 된다. 여러 개의 물컵을 순차적으로 한 잔씩 채울 필요는 없다. 조금씩 매일 채워서 한 번에 여러 잔을 완성할 수도 있는 거니까. 바로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말자. 느리지만 그래도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글로 정리하다 보니 우울했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다. 역시 글쓰기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