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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Dec 07. 2020

퇴사한 회사의 노래자랑에 나가다

#백수일기 49일차_2020년 12월 7일

  코로나로 침체된 분위기도 띄울 겸, 회사에 넘쳐나는 돈도 쓸 겸 전 회사에서 요상한 이벤트를 열었다고 한다. 노래왕과 콘텐츠왕 이벤트다. 콘텐츠왕은 회사 역사와 관련한 콘텐츠 공모전이고, 노래왕은 딱히 기준이 없는 노래자랑 대회다. 출판사니까 콘텐츠는 그렇다 치고... 노래왕? 이런 걸 나갈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참가자가 얼마 없단다. 주최 TF팀에서 여기저기 참가를 독려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퇴사한 내 귀에까지 들렸다. 만약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저기 나갔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마 그럼에도 참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때 후배가 내게 노래왕 피처링을 제안해왔다.     


  사실 나는 음악을 꽤 좋아한다. 노래 부르는 건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해 왔고, 그래서 대학생 때는 밴드 동아리 보컬을 하기도 했다.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기타도 칠 줄 알고, 피아노도 칠 줄 안다. (드럼이랑 바이올린도 배웠는데 이건 다 까먹었다) 요즘은 퇴사하고 시간이 좀 있으니 작곡도 해보는 중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를 실제 노래로 옮겨보는 정도라 혹시나 표절은 아닐까 의심되지만, 여하튼 아주 재미있다. 그런 내게 후배의 제안은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모험이었다. 조금 쪽팔려도 상관없다! 어차피 매일 얼굴 봐야 하는 사람들도 아닌걸.     


  후배는 힙합을 하던 친구로, 음악의 길을 걸으려다 접고 회사에 취업한 케이스이다. 지금은 일과 생활, 그리고 음악의 균형을 맞추며 즐겁게 지낸다고 알고 있다. 여하튼 후배가 먼저 무료 비트를 골라 본인 랩을 입혀서 보내왔다. 나는 여기에 피처링에 해당하는 후렴을 만들어서 부르면 되었다. 후배가 직접 쓴 가사를 들으며 내 피처링에는 어떤 멜로디가 어울릴지, 무슨 가사가 좋을지 생각하는 작업은 즐겁고 신이 났다. 후배는 후배 입장에서, 나는 내 입장에서 각자 어울리는 가사를 쓸 수 있으니까.     


  코로나 때문에 행사는 무대 대신 영상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무대에서 불러야 했다면 아마도 나는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망하고 부끄럽다) 후배와 함께 작업실에서 즐겁게 영상을 촬영했다. 후배는 역시 음악을 해본 짬이 있는 터라 제스처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나도 어설프게 그의 제스처를 따라 하며 어설프지만 열심히 영상을 찍었다.     


  영상 편집은 내가 맡아서 했다. 아무래도 일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시간이 많은 나니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vllo라는 앱을 사용해서 편집하니 아주 간단했다. (갑작스럽지만 vllo 앱 추천!) 녹음한 파일과 영상의 싱크를 맞추고, 밝은 필터를 씌우고, 가사를 자막으로 삽입하고, 각종 효과를 넣었더니 꽤 괜찮아 보이는 영상이 완성되었다. 제출까지 완료!     


  1등은 50만 원 상품권을 준다고 한다. 예이! 이왕이면 현금이 더 좋았겠지만은. 얼굴에 모자이크를 하고 투표를 받는 방식이라고 하던데,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투표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지도 궁금해서 어서 보고 싶다. 우리 건 자작곡이니까 조금 더 매력 있지 않을까? 등수에 욕심을 부릴 일이 아닌데 괜히 자꾸 욕심이 생긴다. 만약 상을 받게 되면, 이게 음악으로 번 내 첫 돈이기 때문에. 그러면 너무 기쁠 것 같아서. 오늘도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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