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마다 꼭 엄마랑 싸운다. 통계학적으로 그렇다. 일 년에 명절이 두 번이면 최소 한 번, 많으면 두 번 싸운다. 오래 붙어 있다 보니 그런 거라고 결론을 내린다. 인간이란, 오래 붙어 있다 보면 싸우는 존재인가 보다. 자취집을 정리하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오면서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가족과 싸우고 나서 편안히 쉴 내 집이 없으니 입맛이 쓰다.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넘어가지 못하는 때가 있다. 어제가 그랬다.
"이 물병 얼마야?"
"그거 만팔천 원인가 그래요."
"이걸 만팔천 원 주고 사? 아주 정신 구멍이 쏙 빠졌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어제는 그 말을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거 내 돈 주고 산 거 아니야."
"아니면 다행이네. 대체 그런 걸 왜 그 돈 주고 사냐?"
"그치만 내 주위에는 이거 돈 내고 사는 사람 많아. 엄마는 말을 왜 그렇게 해?"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자기 방어가 먼저 나왔다. 내 돈 주고 산 거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이것만 내 돈 주고 안 샀을 뿐이지 이런 비슷한 텀블러를 여러 개 사서 잘 써왔다. 내 친구들도 무조건 텀블러 한두 개 정도는 있다. 자기 돈 주고 자기가 뭘 산다는데 이런 말을 들을 필요는 없는 거다. 사소한 말이었지만 여기서 이걸 그냥 넘어가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말을 들어야 하겠지, 하는 마음 때문에 도저히 양보하지 못했다. 얘기가 길어지면 싸움이 커질까 봐 방으로 피신 왔다.
하룻밤이 지나고 나서도 엄마와 나 사이에는 냉기가 돌았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하지만 사과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엄마 왜 이렇게 화가 났어?"
"너 때문이야. 왜 내 편을 안 들고 남의 편을 들어?"
"그건 남의 편을 든 게 아니라-"
"나만 나쁜 사람이다 이거지?"
발전 없는 지지부진한 싸움이 이어졌다. 나는 의견이 안 맞아서 싸우더라도 조용조용히, 서로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게 좋은데 엄마는 늘 나한테 소리를 친다. 너무 듣기가 싫다. 엄마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잘못 살았나 싶다, 왜 엄마를 가르치려고 드냐, 기분이 나쁘니까 앞으로는 더 욕할 거다...라는 내가 듣기에는 이상한 말들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엄마에게 내가 바라는 건 별게 없다. 그저 나를 한 명의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줬으면 싶다. 당연히 나는 엄마 딸이고 애기 때부터 키워 온 존재니까 같잖아(?) 보이고 애처럼 보이겠지만, 이제는 나도 서른이 넘은 지가 한참이다. 모든 걸 가르쳐야 하는 존재가 아니고, 엄마와 다른 삶을 살아온 한 명의 사람이다.
분명 욕을 먹은 건 나인데 왜 엄마가 더 화를 내는지 억울하기만 하다. 이래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건 어렵다고들 하나 보다.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라고. 엄마를 사랑하지만, 나 자신을 지킬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겨우 텀블러 얘기에 발끈하는 게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냥 나도 마음이 좁은 게 아닐까.
글로 정리하고 보니 참 유치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다. 엄마도 그렇겠지. 그래도, 이렇게 싸워놨으니 당분간은 오래 붙어 있을 일이 없어서 오히려 편하겠다는 생각도 드는 거 보면 나도 착한 딸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