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담

연극이 끝나고 난 뒤

by 고양이과인간

나는 연기자다


엄마 앞에서는 제멋대로지만 그래도 마음씨 착한 딸을

회사에서는 조용하고 마감일 잘 지키는 사원을

남자친구 앞에서는 착하고 매력적인 여자친구를 연기한다


가면을 쓴다고도 할 수 있다


연기를 하기 시작한 건 사춘기 때였나

내 머릿속 부품 어떤 것 하나가 남들과 다르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순간 이후였다

내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데 자신이 없어지자

남들이 하는 걸 보고 배웠고 비슷하게 해내기 시작했다

학습에 의한 결과물이다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재미가 없다

남들을 모방한 것에서 그치기 때문에 진실성도 신선함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트러블도 없다


진짜 나를 보여주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트러블이 생기게 되고

그러면 그 친구에게는 그 부분만 다시 가면을 쓴다


하긴 나도 나를 다 모르는데

누구에게 나를 다 보여줄 수 있을까


다만 내 모든 강함과 약함, 아름다움과 추함, 열정과 게으름, 냉정과 감성을 다 보여주었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보냈고


이제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건,

내게 남은 수단은

펜과 종이뿐이다


내가 온전히 솔직해질 수 있는 나의 오랜 친구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샌가 드라마틱하게 쓴다거나 꾸미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이것마저 잃어버리면 나는 진짜 내가 누구인지도 잃어버리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써 나간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적는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연기를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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