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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Jul 29. 2019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 어떤 우둔함

영화

선/악의 보편 형상은 매끄러움/매끄럽지 않음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그 선두다. 사우론의 부하인 모르도르 주민은 언제나 체액을 뚝뚝 흘리고 있거나, 발진으로 가득 차 있다. 이에 반해, 5일 밤낮의 전쟁을 마치고도 레골라스는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피부를 보여준다. 더욱 아크로바틱한 예는 사루만의 포획에서 벗겨나는 세오덴의 얼굴이다. 벌어진 주름과 정리하지 않은 털은 실시간으로 오밀조밀 자리를 갖춘다. <반지의 제왕>은 투명하다. 개별 인물마다 지대한 볼륨이 주어졌던 원작과는 달리, 투명한 인물을 택한 <반지의 제왕>의 선택은 지지할 만하다. 누군가는 나이브한 결말과 구성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블록버스터에서 바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돈 맛만이 궁금할 뿐이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을 다시 보다, 흥미로운 장면을 발견했다. 모르도르로 가는 프로도와 샘은 굉음에 수풀 너머를 바라본다. 모르도르의 원군(援軍)을 자처한 ‘매끄럽지 않은’ 군대가 지나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여기서 샘의 반응이다. 샘은 적(敵)이 타고 있는 올리펀트를 보고 감탄한다. “고향에 돌아가서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예요” 이 장면은 하스미 시게히코가 ‘美의 윤리’라고 역설한 타나자키 준이치로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전쟁 중-인용자) 너무나 맑게 개인 하늘에 기체를 드러내고, 눈부신 광채와 함께 구름 한점없는 하늘을 가로질러 간 「미끈한」 기체의 운동감이, 「멋있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체험으로, 타나자키의 존재를 깊은 곳에서 동요시켰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바닥없는 밝음에는, 단 한 순간의 일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어우리지 않게 표층에 나타나 버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투명한 무엇인가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피터 잭슨은 <고무인간의 최후>로 시작했다. 20년이 지나, R등급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든 <호빗> 시리즈에서도 넘쳐나는 그로테스크처럼 피터 잭슨은 선/악-매끄러움/매끄럽지 않음 중 후자에 자신의 깃발을 꽂고 있다. 샘의 말은 피터 잭슨의 자기 언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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