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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Nov 18. 2019

<깃발, 창공, 파티>, 《모던 아카이브》등

영화


KBS의 《모던 아카이브》 시리즈가 화두가 되는 모양이다. 누군가는 아도르노를, 누군가는 벤야민을 빌려가며 컴필레이션 다큐멘터리(compilation documentary)에 대한 가치화를 시도하지만, “역사 다시 쓰기를 통한 ‘지금-여기’의 재구축” 따위의 문장에 신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대넓얕’의 교양주의 시대에 《모던 아카이브》가 목적하는 역사 서술이 “현재의 화급한 순간”(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를 전환하는 폭발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나이브하다. 우습게도 <밴더스내치>에 이르러서야 일부 논자들이 영화의 종말, 또는 인터액티브 영화의 가능성 따위를 말하였듯, 《모던 아카이브》 역시 방송 주체를 제외하면 논할 가치가 없는 작품처럼 보인다. Netflix의 파급력 + 포터블 기기의 확대, KBS 영상 보관소의 아카이빙 등등.      


이러한 말과 영상의 난장 때문인지, 이틀(11월 16일~11월 17일)동안 오오극장에서 관람한 두 편의 영화 <언더그라운드>(2019)와 <깃발, 창공, 파티>(2019)는 적어도, 진실하게 보였다. <언더그라운드>의 감독 김정근은 다시 한 번, <그림자들의 섬>(2014)에서처럼 개인의 문제를 구조적 전체로 확장하는 순간들을 자아냈다. 공고 학생, 지하철 정비공, 역사(驛舍) 청소부, 기관사 등 지하철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들의 세계를 접한 후 보게 되는 마지막 장면-무인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기관사를 찍은 쇼트는 상당한 밀도로 다가온다. ‘구조’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구조 속에 있는 ‘개인’은 카메라에 정확하게 담긴다. 어쩌면 한계, 어쩌면 장점일지도 모를 특징이 김정근 영화의 지속과 우울의 근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의 성과와는 별개로, 호오를 따지자면 장윤미의 <깃발, 창공, 파티>가 내게는 더 좋은 영화처럼 보였다. <언더그라운드>가 개인을 통해 구조를 포착하고자 했다면, <깃발, 창공, 파티>는 구조보다도 개인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깃발, 창공, 파티>의 말미, 한해를 마무리하며 한 간부는 “웃는 일도 별로 없었는데”(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라고 말하는데, 이 순간 감독이 편취한 일 년과 촬영된 실제 일 년 사이의 간극이 발생하는 동시에 작품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웃는 일’들이 중심을 이루며 편집된 덕에 <깃발, 창공, 파티>의 KEC 노동조합은 (여타 노동 다큐멘터리와 다르게) 내부의 분규와 탄압보다도 즐거움으로 가득 찬 공간처럼 익힌다. 그러나 2시간 40분의 상영시간을 통해 우리는 “웃는 일도 별로 없었는데”라는 말이 절대 거짓이 아님을, 곧 장윤미 감독이 ‘웃는 일’들을 가능한 취하고자 시도했음을 인식하게 된다. 역사 쓰기를 재정립하는 포스트(post)한 시도들(《모던 아카이브》)의 무력함과 구조와 개인의 낙차(<언더그라운드>)가 만드는 우울보다, 나는 –노동조합을 이상화했다는 혐의를 받을지라도- 장윤미의 선택을 지지하고 싶다.   

        

사회적 의제와는 별개로, <깃발, 창공, 파티>에는 주관의 개입을 극도로 자제하고 설명적인 활자 장면을 삽입한 예외적인 특징을 보이는 한편, 창 너머와 문틈 사이로 비치는 나무, 곳곳을 돌아다니는 벌레와 같은 장윤미의 시그니쳐가 공존하는 영화다. 더불어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 <늙은 연꽃>, <콘크리트의 불안>, <공사의 희로애락> 등 (이 말을 쓰기는 싫지만!) ‘사적 다큐멘터리’의 전통에 속해있던 그가, 단번에 사회적 의제로 널 뛴 점 역시 흥미로워 보인다. 그는 “이전 영화와 다르게 찍고 싶었다”(18일, 오오극장 GV)고 말했지만, 단순히 새로운 형식에 대한 시도로 줄이기에는 여러 가지로 이질적인 것 같다.      


장윤미 감독에 대해서는 조금 완성도 있는 글을 써보고 싶으므로,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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