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동현 Apr 10. 2020

2020


1.   

  

트위터에서 모님이 도이힐러를 언급하여서, 그의 신간을 뒤적이다 사진집-『추억의 기록 : 50년 전 내가 만난 한국, 사진 속 순간들』-을 발견했다. 몇 권의 책과 함께 사진집을 빌려 하교 길에 후딱 읽어나가다가, 불현 듯이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추억의 기록』은 도이힐러가 1960-70년에 방한하여 촬영한 사진과 글을 엮은 것인데, 짐짓 산업화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197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친족집단 의례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짙게 남아있었다. “아주 가까운 친척들을 제외하고는 남성은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로 들어갈 수 없었으며, 안채는 작은 중문으로 사랑채와 분리되어 있었다. 여성들은 격리에 익숙했고, 이따금 찾아오는 여성 방문객들 덕분에 기분을 전환했다.”(80~81쪽)는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일시적인 제의에서의 시공간 분리가 아니라, 상시적인 일상에서의 시공간 분리가 생각보다 오래도록 잔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였다.    

 

김기영, 유현목의 영화를 두고 평자들은 ‘근대와 전근대의 동거’ 따위의 말로 평가를 맺는다. 그러나 ‘근대와 전근대의 동거’는 그들의 영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결론이 아니라 전제다. 근대와 전근대가 동거하던 시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1950년대 영화와 동시대 감각」이라는 짧은 메모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진 시·공간과, 영화를 보는 지금의 시·공간 사이의 차이에 대해 쓴 바 있다. 기대지평·당대사회에 대한 정보의 차이에서 말미암는 감상의 차이. 이를 훨씬 깊은 층위에서 생각해 보아야겠다. 1960-70년대 관객들은 인물이 안채를 넘는 것만으로도 서스펜스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적 관점에서 후사적(retrospecitve)으로 완수되는 전근대와 근대의 동거 따위는 아무 의미 없는 수사다. 현대가 파악하지 못하는 관습의 세목으로 당대 영화의 ‘의도’를 복원하고 새로운 결을 짜볼 필요가 있다.     


2.

      

「‘1990년대’가 복권시킨 김기영과 허구의 틈입」이라는 글에서, 나는 1990년대 시네필이 김기영을 ‘우리의 작가’로 복권시키면서, 발생한 오류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양산도>(1955)의 결말 장면과 쓰키지 소극장의 오사나이 가오루 같은 이야기가 와전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이연호의 『전설의 낙인』을 다시 뒤적이다, 당대 충무로에 퍼졌던 김기영의 괴상한 습벽에 대한 소문의 발원지가, 김기영 감독 자신이라는 일화가 잠깐 언급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기실 <양산도>의 결말이 와전된 것은, 김기영이 그와 같이 회고를 했기 때문이다. 오사나이 가오루 같은 경우도 그가 살아있는 동안 발표된 글에서 서술된 바 있으나, 수정을 요청하지 않았다.      


김기영이 하늘로 향하는 부력작용이 있다. 그것은 1990년대 시네필의 억압된 애국심의 과잉작용일 수도 있고, 김기영 자신의 부력작용일 수도 있다. 김기영은 세상을 유령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유령을 위한 메모」는 끝없이 더해져야 한다.      


3.      


한편 199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영화사는 ‘김기영 모델’이다. 김기영의 자식들과, 김기영-자식들을 희화화하고 배후에서 습격하려는 ‘하녀’들이 있다.      


그리고 잊혀진 (등록되지 않은) ‘김기영의 개자식’들이 있다. ‘김기영의 개자식들’이라는 중편 분량의 글을 쓸 생각이다. (쓰고나면 어디든 투고할 생각이다. 이런 글을 받아줄 지면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떠오르셨다면 추천 좀 부탁드려요)               

작가의 이전글 존 포드와 문혜란의 서신 교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