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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Nov 04. 2020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관광하기

링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대화 선택지를 눌러도 링크의 말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링크는 오직 먹고, 숨을 보충하고, 입김을 내뱉을 때만 입을 연다. 그는 입을 닫고 있다(closed-air). 링크의 침묵은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하 [야숨])의 시작 조건이다. 100년의 동면을 거치고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깨어난 링크에게는 오직 몸의 작동만이 남아있다. 달리기, 점프, 등반, 덤블링, 패링. 능란한 몸놀림을 이용해, 이제 링크는 100년 전의 기억을 찾아야한다. 기억은 하이랄 대지 곳곳에 산포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링크의 닫힌 입 속을 메우기 위해 [야숨]의 “open-air” 월드 곳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동물적 몸에서 언어-역사-인간으로. 링크는 ‘내면’을 메우기 위해, 젤다가 남긴 사진이 촬영된 장소를 찾아야한다. 기하학적 공간과 내면? 젤다라는 신적 타자? [야숨]의 메인 내러티브는 ‘근대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야숨]에서 하이랄의 동맹을 제외한 모든 것은 소모품 혹은 악역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동물과 식물을 모조리 죽여라, 요정은 납치하고 나무는 모조리 베어버려라. 골드를 위해 우라이트 폭포 동굴에 불을 붙이고 신수(神獸)의 뿔 조각을 모아라. 파밍(황폐하게) 하라! 그러므로 [야숨]의 내러티브가 ‘인간중심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비판은 합당하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야숨] 전체에 대한 비판이나, [야숨] 플레이어에 대한 비판으로 격상되는 것은 아니다. 내용 흐름만으로 내러티브를 비판할 수도 없거니와, 재현 대상과 현실 대상의 위상을 세밀히 검토하지 않는 건… 싫으니까. 그러므로 이 글에 [야숨]을 비판한다거나, 평가할 의도는 없다. 다만 젤다의 연구실에서 한 떨기 고요한 공주를 발견했을 때부터, “고마워요 링크, 하이랄의 용사, 기억하시나요?”에 이르기까지. 머리가 아프도록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동시에 “어휴; 지랄하네”가 문득 떠올렸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었다. 말을 타고 지나가는 여우를 모조리 치어 죽였던 때, 작은 못에 전기화살을 쏘아 물고기를 몰살시켰던 때 때,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마구간 근처를 모조리 벌목했던 때… 고마워요 링크? 어휴; 지랄하네.     


① “동물 사냥하지 않는 사람 있어? 걔들은 너무 귀여워서 못 죽이겠어. 그래서 난 식물을 먹거나 보코블린이 캠프에 남겨둔 걸로 때워. 물론, 물약은 하나도 못 만든다는 말이지 ;_;” (https://gamefaqs.gamespot.com/boards/189707-the-legend-of-zelda-breath-of-the-wild/75070920)
② “혹시 성 근처에서 동물 죽일 때 마음 안 좋은 사람 있어? (…) 당연히 평소 같으면 나도 걔들을 죽일 땐 아무 생각 안 들어. 그게 여우라도. 그런데 내가 성 근처에 있을 때면 이렇게 생각하곤 해. ‘숲으로 돌아가렴 작은 친구야. 링크가 너를 지켜줄거란다. 내가 성을 감싸고 있는 어둠을 몰아낼게’ 이러는 거 나 혼자야?”(https://www.reddit.com/r/zelda/comments/77qac7/does_anybody_else_feel_bad_killing_animals_next/)


처음에는 나만 미친 줄 알았다. 그러나 나만 미친 건 아니었다. 나처럼 미친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①과 ②처럼, [야숨]에서 동물을 못 죽이는 사람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조금 더 미친 쪽은 나인 것 같은데, 내가 [야숨] 결말의 ‘인간중심주의’에 겸연쩍었던 주요 계기는, 작고 귀여운 여우나 다람쥐가 아니었다. 나는 [야숨]의 몬스터 보코블린, 모리블린, 리잘포스, 라이넬을 학살하며 ‘하이랄의 용사’를 거머쥐는 게 부당해보였다. 귀여운 외양만 갖고 있는 동물 따위와는 다르게, [야숨]의 몬스터들은 문화를 갖고 있다. 사냥감을 잡아서 불에 구워 먹고 춤을 추는 보코블린, 협곡에 꽂힌 검을 두고 언쟁하는 보코블린과 모리블린… [야숨]의 컨셉북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영웅 만들기(The Legend of Zelda: Breath of The Wild- Creating Champion)』은 몬스터들을 “하이랄 시민의 골칫거리”라 칭하지만, 그건 니들 입장 아닐까…? 그래서 나는 다른 플레이를 상상해보고 싶었다. 영문도 모른 채 이름을 부르는 시커스톤-젤다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고 [야숨]을 ‘관광’할 수는 없을까?     


안천: 아즈마-로티의 타자관과, 가라타니-다카히스이 타자관은 어떻게 다릅니까?
아즈마: 가라타니나 다카하시의 타자는 궁극적으로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로티의 타자는 동물이라고 할까. 가까이에 있는 애완동물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애완견은 타자인가?”라고 물었을 때, 가라타니나 다카하시는 애완견을 타자로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티는 애완견이야말로 타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봤을 때 이는 사람을 동물로 취급하는 철학이기도 합니다.(안천, 아즈마 히로키, 『철학의 태도』, 북노마드, 2020, 33~34쪽)      



아즈마의 짧은 타자론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아즈마에게 타자는 시커스톤에서 울려오는 젤다의 목소리만큼, 고원에서 만나는 멧돼지와 다람쥐 또는 보코블린이다. 시커스톤이 쥐어주는 메인퀘스트를 무시하자. [야숨]을 관광하기! 하루 빨리 젤다를 구하러가라는 임파의 말은 딜레이하자. 젤다의 목소리를 따르기 전에 보코블린의 말도 들어보고, 동물권도 생각해보고, 왕정보다는 공화정이 낫지 않나요? 이 나라는 성적으로 너무 편협하지 않나요? [야숨]을 관광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겔드 앞 오아시스 마을에 살고 있는 트랜스 여성 빌리아와 이야기해보자. 게이 커플 볼슨, 카슨과 이야기해보자. 킬튼에게 몬스터 탈을 사서 몬스터 생태학자가 되어보자. 

    

그러면 젤다는요? 임파가 자꾸만 빨리 가라고 갈구네요. 영걸들이 은근히 꼽줘요. 아즈마에 의하면 관광의 본질적 요소는 (방법으로서-인용자) 무책임함이다. [야숨]을 다시 플레이할 날이 온다면, 어릴 적 [GTA: SA]을 하며 교통신호를 지켰던 시절을 떠올리며. 몬스터 생태학자 롤을 맡아보고 싶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은 직전에 플레이한 [폴아웃 3]의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텐페니 타워」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가논과 젤다를 화해시키면 세나가 나를 욕하기 시작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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