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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Mar 17. 2021

「연기파 식모 3년에 영화 스타로-윤여정 양」

한국영화사를 위한 비망록

영화사를 저장하는 배우는 드물다. 나는 <미나리>(2021)를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윤여정이 한국의 할머니-라는 내가 얻은 유일한 정보-로 분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화녀>(1971)의 명자가 먼저 생각났다. 장 루이 뢰트라는 제리 루이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두고 “죽은 것을 되살리는 연출가이자 배우”라고 했다. 그들 옆의 윤여정은 어색하지 않다. 나는 동시대 한국영화 거장-박찬욱, 봉준호-의 근거지를, 김기영의 시체스적 의지로 이야기한 바 있다(마테리알 4호). 윤여정은 스크린에 김기영, 그리고 김기영적 영화로 구성된 ‘한국영화’의 특질로서 무주의(無主意)를 되살린다. 임상수가 <그때 그 사람들>(2005)의 나레이터-목소리로 윤여정을 등장시킬 때, 전짓불의 강요(이청준의 ‘한국’) 앞에서 유일한, 단 하나의 태도가 다시 한 번 스크린에 서린 것처럼.     


아래 기사는 《선데이 서울》 3권 33호(1970.08.16.)에 실린 윤여정의 인터뷰를 내가 옮긴 것이다. 큰 내용은 없지만 영화사와 윤여정이 처음으로 조우하는 <화녀>(1971)에 앞서 이뤄졌다는 점을 기념하며 복사해둔 것으로,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지명을 기념하며 옮겨보았다. 





「연기파 식모 3년에 영화 스타로-<화녀>의 주역 맡은 윤여정 양」     



“잘 해낼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이에요” TV 탤런트 3년만에 영화 <화녀>(김기영 감독)의 주역을 맡은 윤여정양(23)의 영화계 「데뷔」 첫 마디. 윤양은 극단 「산울림」의 창단 「멤버」로도 참가하여 TV•영화•연극 세 가지 길을 모두 달리는 「슈퍼•우먼」으로 등장 했는데-.  

   

“작품 잘 소화시킬지 처음이라 걱정예요” 

1947년 개성태생. 딸만 셋인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고향을 떠난 것이 1•4 후퇴 때. 서울의 창신국민학교를 거쳐 66년 이화여고를 졸업, 한양대학 국문과를 중퇴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때 돌아가고 학교 교의(校醫)로 있는 어머니 신소자 여사(46)와 동생들의 단촐한 식구.     


-어떻게 영화에 나가게 되었죠?

“제가 tv 드라마에서 식모 역을 많이 했잖아요? 이번에 출연하는 <화녀>는 옛날에 한 번 나왔던 적이 있는 <하녀>란 작품의 리바이벌이에요. 그 때 이은심씨가 맡았던 역을 제가 하게 됐는데 「타이틀•롤」이죠. 잘 해야 될텐데 걱정이에요. 처음이라서 글쎄…” TV 「드라마」에서는 자신 있는 연기파 윤양이지만 처음 영화에 나가는 것이라서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것. “TV 「드라마」하고 영화하고는 호흡이 다르잖아요? TV는 죽 연결이 되어서 한번 「슈팅」하면 그 감정이 계속해서 사는데 영화는 「커트」마다 끊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드라마」의 감정에 단절이 생기게 돼요. 어떤 사람은 그래서 더욱 쉽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난 더 곤란할 것 같아요”     


-연기의 비결이라도 있나요?

“누구나 그렇듯 바로 극중의 인물이 된 듯 분위기에 사로 잡히는 거죠. 그래서 내 경우는 한 번 「슈팅」에 들어 갔다 하면 비교적 쉽게 끝까지 소화시킬 수가 있어요. 말하자면 작품을 소화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어떻게 소화시키느냐 하는 게 문제겠죠”     


연기의 폭 넓히고 싶어 극단 산울림에 참여     


-어떻게 TV와 인연을 맺게 됐죠?

“67년 대학 1학년 때 홍두표(TBC-TV 편성부 국장)이 원해서 보조 MC로 김동건(金東鍵) 「아나운서」하고 「위키」리(李)씨와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됐어요. 이왕 TV를 하려면 연기자 생활을 해보라고 해서 TBC 「탤런트」3기생으로 들어 갔어요. 그 때 함께 10명이 들어갔는데 지금까지 남은 사람은 저 혼자뿐이에요. 저도 사실은 68년 여름에 그만 두었다가 1년만에 다시 들어온 거예요”     


-출연 작품은?

“얼마 안 돼요. 모두 해서 10편 쯤 될까요? 그리고 또 저는 원채 병아리 인데다가 중간에 1년 동안 쉬기까지 했으니 더욱 작품이 없죠. 연기력이 없다는 얘기겠죠” 그러나 윤양은 지난해 TBC-TV에서 최우수 신인 「탤런트」 상을 차지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연극 무대엔 서봤나요?

“연극이라고는 지난 해에 신협(新協)에서 공연했던 <마술의 제자>에 단역으로 출연한 경력 밖에는 없어요. 곧 창립될 극단 「산울림」에 참가하게 된 것은 참된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죠. TV 한 가지만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울 것 같아요. 어떤 분은 한 가지 만이라도 철저히 하라고 말씀하지만 연기의 폭을 넓힌다고 할까요. 아무튼 연기자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연극을 해야할 것 같아요”     


단짝들과 어울릴 땐 말솜씨로 한 몫보고


-한가한 시간은 어떻게 보내죠?

“친구들 하고 집으로 몰려 다니며 노는 게 취미에요. 단짝이 6명인데 TBC-TV 제작부 차장 이백천 선생님, 가수 조영남, 최영희, 「트윈·폴리오」 「맴버」였던 송창식, 윤형주… 이렇게가 단짝이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노래를 잘 부르는데 나만은 못 불러요. 듣기만 하는 거죠”   만나면 으례 「기타」를 들고 모여앉아 합창을 하게 마련인데 윤양은 애석하게도 그중에 끼지 못하고 감상만으로 만족한다는 것. 노래 솜씨가 없는 대신 얘기하는 솜씨는 그 중에서 제일이라고. 현재 MBC「라디오」에서 <청춘만세>란 젊은이 대상 「프로그램」의 「디스크·재키」로 활약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윤양의 말솜씨는 짐작이 갈만도.     


시력이 나빠 괴롭고 말많은 남자는 질색     


- 「데이트」하는 남자가 있겠죠?

“없어요” 한마디로 잘라 버리면서, “말이 많은 남자는 질색이에요” 아직 결혼할 꿈도 꾸어 보지 않았고 바람직한 남성상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제일 괴로운 점이 있다면 뭣이죠?

“눈이 굉장히 나빠요. 시력이 0.01예요. 거리에서 누굴 만나도 못 알아 볼 때가 많아요. 그래서 건방지다고 오해도 많이 받죠. 언젠가는 시장에서 엄마를 만났는데도 못 알아 봤어요. 그 정도니 녹화할 때 「큐」(연출자의 사인)를 못 보기가 십상이죠. 연출 하시는 분이 많이 고생하시죠. TV「드라머」는 눈치 빠르게 해야 하는건데 바로 앞에서 주는 「큐」도 제대로 못 받으니 곤란할 때가 많아요”     


- 눈은 언제부터 나빠졌죠?

“중 3때 부터인가 봐요. 공연히 잠도 안자면서 「펄·벅」이다 뭐다 하면서 소설을 읽다보니 이 지경으로 절벽이 된거죠”     


윤양은 지난 3월에 TBC-TV에서 MBC로 옮겨 <강변살자>, <사랑과 슬픔의 강>에 출연. 8월말부터 나갈 목요 「드라머」에 「히로인」으로 출연할 예정.                                   

작가의 이전글 『3355』에 「당신 시네필인가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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