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제작한 블루레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해설지에서, 이화정은 “또 하나의 재밌는 장면은 영화에서 시어머니의 명령으로 한선생이 집을 나갈 처지에 처한 후, 과부와 한선생 그리고 옥희가 함께 걷는 장면이다.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이 장면에서 두 남녀는 한 번도 서로 말을 나누지 않고, 옆자리에 서지 않은 채 멀찍이 떨어져 걸으며, 이때 둘 사이를 오가는 대화 역시 ‘전령사’ 옥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성인 남녀와 아이가 함께 걸어가는 이 장면은 누가 봐도 단란한 가족 이미지(굵게-인용자)를 연출해 낸다.”고 썼다.
해당 장면은 영화의 1시간 06분부터의 4분간이다. 이 장면이 어떻게, “단란한 가족 이미지”로 보일 수 있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나는 이 장면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가장 훌륭한 장면이라 생각하며, 그 이유는 ‘단란함’이 끝내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표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① 옥희가 머리가 아파 열이 난다고 하자. ② 멀찍이 걷던 엄마는 가까워진다. ③ 엄마가 가까워졌음을 확인하자마자 ④ 아저씨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가방을 들고 떠날 채비를 한다. ⑤ 엄마가 옥희에게 손을 대자, 아저씨는 혹여 옥희를 통해 엄마의 전류라도 전해질까, 바로 옥희를 업는다. ⑥ 다시 떨어지자, 엄마는 아저씨의 가방을 들려 하고 아저씨는 가방조차 내뺀다.
엄마와 아저씨 사이의 감정을 전달하던 옥희의 기능 마비-기실 옥희의 존재는 엄마가 과부임을 방증하는, 아저씨와의 맺어짐을 방해하는 요소다-의 순간에야 둘은 가까워질 수 있지만, 그것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장면인 셈이다.
이 장면은 1960년대 한국영화의 가장 큰 배우였던 최은희와 김진규, 그리고 문예적인 것을 곧 예술적인 것으로 여기던 시대에 “영화는 스토리 중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테크닉의 생동감이 문제”라고 말했다는 신상옥의 저력을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보여준다. 단란한 가족 이미지의 반대편에서.
2.
조금만 덧붙이자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대한 많은 비평이 모조리 근대와 전근대의 경합이라는 ‘텍스트’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주요섭의 소설에 이미 내장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신상옥이 앞서 일렀듯) “테크닉의 생동감”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비평이 기왕에 주목했어야 할 장면은 아래 장면이다.
① 옥희가 아저씨가 떠난다고 전하고 ② 엄마 품에 안겨 울자 ③ 쪽 지어둔 한 쪽 머리가 풀린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내러티브, 이미지 양자에서 머리카락을 푸는 것, 은 근대화-여기서는 과부의 재혼-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거울에 비친 오른쪽 얼굴-쪽진 머리 엄마와 카메라에 비치는 왼쪽 얼굴-풀린 머리 엄마의 이미지는, 전근대와 근대의 경합이라는 토픽을 물질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