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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May 08. 2021

<이어도>(1977)의 네크로리얼리즘

김기영 이야기

2020년 02월 17일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린다. 「협잡꾼 당신-『김기영 평전』을 위한 단편」과 겹치는 지점이 있어 오래도록 비공개 설정을 해뒀다. 읽어보면 알 수 있듯, 이 글에서 시작한 생각을 지속한 결과가 「협잡꾼 당신-『김기영 평전』을 위한 단편」이다. 모자란 글이지만, 두 글을 함께 읽었을 때 내가 쓰지 못한/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읽힐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업로드 한다. 


알렉세이 유르착은 "'호모 소비에티쿠스따위의 말로 손쉽게 폄하되어온 소비에트의 주체성을 재인간화rehumanize”하기 위해 모든 것은 영원했다사라지기 전까지는을 집필했다.1)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가 아닐지라도 다른 문화특히 압제적 권력 하의 문화를 상상할 때 종종 그들은 단일한 인간형-이를테면 호모 소비에티쿠스’-으로 상상되며 구체적 행위성은 박탈당한다. 1970년대 한국영화를 간단히 외설적-호스티스 영화로 퉁 칠 때그는 충분한 양의 1970년대 영화를 봤을까?



1961년생 김소영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반공 포스터와 선전 포스터를 그리고하교 길에는 박정희의 포스터에는 침을 뱉는 내기를 하곤 했다.”고 회고했다.2) 박정희 포스터에 흘러내렸을 초등학생의 침을 국가 담론 수행적 전환의 증거로 채택할 수는 없을까여기서 문제 틀은 비범한 개인의 정치적 역량에서 대중의 ()의식적 역량으로 전환될 수 있다공교롭게도 김소영이 박정희의 포스터에 침을 뱉었을 즈음, 1974미국에서 시작된 스트리킹streaking이 한국에서 행해졌다. “청년이 길 한복판을 달려가는 동안 뒤에서 친구로 보이는 1명이 카메라로 계속 청년의 나체질주를 촬영했으며 다른 1명은 청년의 옷꾸러미를 옆구리에 낀 채 뒤쫓다가 3명이 함께 사라졌다.”3) 비록 촬영이 이뤄졌다고 하지만그들이 이유를 밝히지 않은 한 행위의 정치적 성격을 섣불리 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그러나 명분이 공개되지 않았음이 이들의 스트리킹을 멍청한 흥겨움” 혹은 활기찬 백치 짓거리로 읽게 만들며,4) 그들을 소비에트 말기 종말의 냄새를 물씬 풍겼던 네크로리얼리스트들의 친구로 지정할 틈을 낳는다.

 

이처럼 종말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겼지만누구도 선포하고 주장할 수 없었던 1970년대 국가 담론은 영화에서도 굴절되었다송아름의 1970년대 한국영화 검열의 역학과 문화정치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5) 1970년대 검열서류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검열자와 제작자의 행위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설정한 이 논문은 국가 담론과의 부합 여부를 따지는 검열이 행정 업무의 일부로서 수행적 전환이 발생했으며검열과정에서 국가담론이 쉽사리 굴절되었음을 논증하였다때때로 기함을 토하게 하는 1970년대 한국영화의 외설 장면 역시 이 논문에 의하면 영화제 수출용 필름으로 허용되었다고 한다송아름의 논의를 딛고 이야기하자면현재 남아있는 <이어도>(1977)는 영화제 수출용 필름인 것처럼 보인다. <이어도>는 1978년 베를린 영화제 출품 추천작으로 꼽혔으며덕분인지 검열 서류에서 '제한사항'으로 지적된 -대체로 외설이라는 이유로장면들 또한 영화에 오롯이 남아있다한 장면만 예를 들자면 천남석이 전복 양식을 위해 자신의 정충(精蟲)을 이용하는 장면은 검열 서류를 통해 전체 삭제 지시를 받았지만아래 쇼트-대사에서 볼 수 있듯 현재 필름에는 모두 남아 있다.


부인 : 이게 뭐에요? 꽁지가 보이네요
천남석 : 그건 내 몸속의 벌레야.
부인 : 병에 걸리셨군요.
천남석 : 그건 사람 벌레야. 내 분신이야. 알을 하나 임신시키는데, 정충이 하나가 아니라 단 번에 일 억 마             리가 필요하다는 학설이야.


그러므로 <이어도>의 마지막 시체 성교 장면이 하필 죽은 아비의 성기에 못을 박고그로부터 정충을 뽑아낸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보인다기실 <이어도>에서 사회를 이루는 것은 오직 여성 뿐이다죽은 아버지-국가의 남근에 못을 박아 생장의 힘을 얻는 여성-사회, 여기서 <이어도>는 1970년대 영화 만들기에 대한 네크로리얼리즘적 우화가 된다.




1) 알렉세이 유르착•김수환 역,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문학과지성사, 2019, 619쪽

2) 김소영, 『근대성의 유령들』, 씨앗을뿌리는사람들, 2000, 16쪽.

3) 「스트리킹 한국 상륙」, 『동아일보』, 1974.03.13.

4) 알렉세이 유르착•김수환 역,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문학과지성사, 2019, 457쪽

5) 송아름, 「1970년대 한국영화 검열의 역학과 문화정치」,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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