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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Dec 03. 2021

<로맨스 빠빠>의 한 장면에 대한 메모


<로맨스 빠빠>(신상옥, 1960) 중반부. 둘째(남궁인)가 가족들 모인 자리에서 시나리오를 읽어주는 장면. 둘째의 판본이 성에 안 찬 아빠(김승호)와 엄마(주증녀)는 해당 시나리오를 새로이 창작한다. 둘째, 아빠, 엄마가 시나리오를 상상할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오버랩 되는데, 송효정이 이를 두고 두고 "모더니즘, 신파 멜로, 사극 등 다양한 형식이 가족의 상상력에 동원되며 이는 실상 신상옥이 이전과 이후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전개해간 작품들의 다양성"이 나타난다고 이야기 한 적 있다. 모더니즘, 신파 멜로, 사극이 모두 다른 층위에 있다는 점에서-모더니즘 신파 멜로 사극이라는 장르도 생각해 볼 수 있다-정확하지는 않지만, 순서에 맞춰 <지옥화>(1959),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0), <성춘향>(1960)을 대입하면 적절하게 읽어줄 수도 있다. 캡쳐 장면은 둘째의 상상이다. 정성일은 <지옥화>에 "신상옥 감독님이 가지 않았던 길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그 가지 않은 길이 너무 아쉬"웠다고 이야기한 적있다. 둘째의 상상은 극히 짧지만, 신상옥이 가지 않았던 <지옥화>의 그 길을 짧게 볼 수 있다. 한국 영화 제작 환경을 영웅적으로 구축한 사회인 신상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송효정이 모더니즘이라 표현한 것 같은) 데카당의 정조가 그것이다. 과하지 않은 표정, 후경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과 정사(情死). 한 발 끝에 걸려있다 끝내 떨어지는 신발. 이 장면의 요소들은 (<지옥화>의 '늪'이라는 장소가 파괴적으로 구사한 적 있듯) 효과적으로 데카당을 물질화 한다. 


V.F 퍼킨스는 "카메라와 몽타주 기법에 중심을 두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비평가나 영화 이론가에 의하여 가장 지속적으로 무시 당하는 것이 바로 연기에 대한 지휘자로서의 감독의 역할"(『영화는 영화다』, 94쪽)이라고 했고, 나는 신상옥이 같은 맥락에서 무시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양우는 신상옥이 1952년 <약아>를 만들때 이렇게 말했다고 썼다. "영화는 스토리 중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테크닉의 생동감이 문제"(『이럴 수가 있을까』, 115쪽) 한국영화사 연구/비평에서 신상옥은 줄곧 거대한 단어들-근대화, 역사소설, 박정희, 국립영화제작소, 납북-과 함께 거론되어 왔지만, 더욱 작은 단어들-이를테면 손짓 발꿈치 곁눈질 발자국-과 신상옥이 조합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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