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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May 07. 2022

MCU에 대한 단상

어제부터 「완다 비전」을 조금씩 보고 있다. 1-3화는 굉장히 탁월했다. K-Punk에 실린 영국 드라마에 대한 내용도 떠올랐다. 갇힌 시간과 외부의 틈입이 고전 코미디의 형식—퀵실버는 자기가 이러이러한 역할을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데, 이처럼 「완다비전」의 인물들은 고전 코미디의 형식을 체화한 유령들이다.과 주파수에 할당한 게 참 좋았다. 그런데 그 외부를 정확하게 '화면'에 드러내는 순간들은 나를 굉장히 따분하게 만들었다. 모니카 대위와 달시 루이스 등등 FBI니 S.W.O.R.D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그저 수많은 MCU 작품 중 하나가 되어버리는 그런 느낌(후지다는 말이다). 몰랐는데 모니카 대위와 달시 루이스는 「캡틴 마블」(안 봐서 모름)과 「토르」 시리즈(봤는데 기억 안 남)에 나온다고 했다. 친구가 알려준 건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 외부의 인물들, 모니카 대위와 달시 루이스가 하이퍼텍스트로서 「완다 비전」 문서와 「캡틴 마블」, 「토르」 문서 사이에 링크를 만들기 위해 구성되었다는 점이 확 느껴졌다. 모든 작품을 하나의 (굉장히 좁은!) 세계로 연결하려는 아카이브적 욕망이라고 해야 할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도 짧게 이야기했는데,  이런 욕망이 MCU와 동시대 영화가 처한 환경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멀티버스가 도입됨으로서 세계에 틈입 하는 악당들을 막으려는 서사가 전개되지만, 정작 표현 층위에서는 문화적 공유 기억이 요청하는 어트랙션들이 객석의 요구에 부응하듯 돌아온다. MCU 영화를 보러 가면 어두운 극장에 휴대폰 불빛이 깜빡 깜빡 거리는 걸 더욱 잦게 보는데, 그 불빛이 영화관의 어둠을 드문드문 몰아내듯(그럼으로서 우리의 신체를 일깨우듯) 다른 세계가 자꾸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도 완다와 비전이 나오는 장면들은 모두 좋다. 뒤로 갈수록 좀 심드렁해지지만, MCU의 여태 작품들 중에서는 (7화까지 보고 쓰는 글이지만) 가장 좋은 것 같고 그렇다. 뭔가 이런 MCU의 욕망도 그렇고, 「완다 비전」도 그렇고 긴 글을 써보고 싶게 만든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늙은 캡틴 아메리카가 나왔을 때 굉장히 이상한 느낌을 받았었다. 같은 시기 극장에서 본  「노새The Mule」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과 겹쳐지면서 말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볼 수 있듯 그 역시 불안을 다소 갖고 있기는 하지만) CGI의 가상적 노화로 인해 현실의 불안이 제거된 캡틴 아메리카-얼굴과 미국의 역사를 운반하면서 그 불안을 함께 살고 표현해온 클린트 이스트우드-얼굴이 대비되면서 묘한 대비를 느꼈던 것이다. 여하튼 (모두 「로건」을 재밌게 봐서 그런 것 같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늙은 캡틴 아메리카에 대한 영화가 한 편 나오면 어떨까, 는 생각을 했었다. 힘을 잃고 대충 선량한 마을 노인이 된 스티븐 로저스가 어디 잡배들과 싸우며 "I can do this all day"하는 장면... 살짝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찔끔 난다. 어쨌건 MCU의 관객들은 굉장히 많은 양의 '공유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시리즈의 연속을 생각하지 않고 그 기억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좀 자유롭게 감독에게 줄 때, 재밌는 영화가 많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히어로의 퇴임(Retire) 영화들을 그런 방식으로 찍을 수 있는 길도 있을 것 같은데. (멀티버스의 도입으로 좀 쫑난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완다 비전」같이 탁월한 드라마도 중간에 껴있고... MCU의 이러한 측면에는 생각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에.. 아마 죽기 전까지 MCU에 돈을 갖다 바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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