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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Aug 20. 2022

『아카이브 프리즘 9호』에 참여했다.



한국영상자료원 기관지 『아카이브 프리즘』 9호 '리와인드 비디오 시대의 어휘들'에 김기영과 십만원비디오페스티벌로 참여했다. 주제가 주제이니 참여하는 다른 필자 분들과 세대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책을 훑어보니 신기하다. 김형석, 김도훈, 문석, 성하훈, 주성철, 허남웅.. 살짝 훑어보았지만 이런 세대 차이로 인한 것인지, 내 글의 시계(時/視界)가 조금 달라 재밌다. 제목과 기획에 걸맞게 다른 필자들은 비디오 시대를 리와인드rewind한다. 하지만 비디오 영상 중에는 '건전비디오' 밖에 기억나지 않는 p2p/토렌트 시네필인 나는, 비디오 시대를 리와인드rewind할 수 없고 다만 상상훌 수 있을 뿐이다. 박찬욱이 쓴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 드롬』을 읽고 상상했거나, 어린 시절 비디오/만화 대여점에서 문자 그대로 도색(桃色) 비디오들을 힐끗 힐끗 몰래 보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아카이브 프리즘 9호』는 아래 링크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https://www.kmdb.or.kr/story/webzine/1109



아무튼 애초에 '김기영'에 대해서 보냈던 원고는 현재 실린 글과 조금 다르다. 지금은 90년대 김기영의 '컬트' 자체에 다소 주목한 원고가 실려있지만. 기왕에 내가 보냈던 원고는 90년대 김기영 비디오와 에로 비디오의 근접성에 대한 것, 「김기영의 (후레) 자식들-강철웅 인터뷰」과 연장선이었다. 「(후레) 자식들」 보다 거슬러 「어느 부전자의 초상」 혹은 「협잡꾼 당신」 까지, 나는 항시 김기영을 '정전화' 이전의 에너지로 되감아rewind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다 간단히 말하자. 류승완은 비디오 가게 아르바이트 시절 김기영의 영화를 도색 진열대에서 고전 명작 코너로 옮겨 꽂았다고 한다. 나는 김기영의 영화를 도색 진열대의 맥락에서 보고 싶다. 야만적 유희자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이하가 내가 기왕에 보냈던 원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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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1995년까지 김기영의 영화는 한국영화사의 돌연변이였다. 김기영이 속해 있는 계보도 보이지 않았고그가 만든 계보도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에서 김기영의 영향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1990년대 후반 혹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B급 영화에 깊은 애정을 지녔으며 장르영화에 해박하고 김기영의 영화에 관해서는 비장의 목록 하나씩은 가진 이들이 2000년대 한국 대중영화의 중심적 인물로서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이들은 김기영 영화를 의식적으로 오마주한 작품<돈의 맛>(임상수, 2012), <기생충>(봉준호, 2020)을 만들었고김기영에게 받은 영향이 과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도 평자들은 어른거리는 김기영의 유령에서 상상의 계보를 찾기도 했다. 주지하듯 변화의 배경은 김기영 컬트였다. PC통신을 통해 영화 제목을 맞추는 퀴즈(영퀴방)문화 가 형성되면서 남들은 알지 못하는 영화에 대한 갈망이 생겨났을 때 영화잡지 로드쇼가 컬트를 소개했고이에 한국의 컬트영화를 찾는 과정에서 김기영이 재발견된 것이다.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러한 재발견을 공식화하는 행사였다


정성일은 김기영 컬트를 만든 당사자들이 1960-70년대 김기영의 작가적 위치를 모르는 영화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바 있다. 비디오점의 진열대에서엉터리 재킷들 속에서그저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 중 하나로김기영의 영화를 발견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재발견되기 전김기영은 어떻게 다뤄졌을까?


당해 출시된 비디오를 모은 도서 열려라 비디오 5000에는 김기영의 이름 아래 세 편의 영화가 열거되어 있다. <화녀>, <렌의 애가>, 그리고 이름도 생경한 <흐트러진 침대>. <흐트러진 침대>는 어떤 영화일까알려지지 않은 김기영의 video only 영화이름만 살짝 바꿔친 작품모두 아니다. <흐트러진 침대>의 연출자 김기영은그냥 김기영의 동명이인이다그런데 그 김기영은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KMDb에 따르면 그는 <흐트러진 침대>(1989) 이후 <매화방 천둥불 2>(1990), <붉은 사과는 맛이 있다>(1990) 그리고 <복카치오 92>(1992)와 <복카치오 93>(1993)을 연달아 연출한 감독이었다적당히 음흉한 시절을 보냈으면 금방 알아챘겠지만그는 90년대의 에로영화 감독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2000년 안성기 하지원이 출연한 <진실게임>이라는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하지원은 이 영화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오인은 단순한 편집상의 실수일까나는 오인이 발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그 배경은 갑작스런 비디오의 공급에서 연원한다그 첫 번째 배경은 에로의 침투력이다에로를 욕망하는 관객은 영화의 모든 성애 장면을 에로의 맥락으로 볼 수 있다그리고 비디오 제작사는 이 욕망을 포착하고 그렇게 포장해서 상품화 할 수 있다가령 비디오박물관 아비정사에 아카이빙된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김기영, 1979)의 커버에는 실제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섹스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관객의 욕망이 이와 같은 포장욕망이 클 때는 포장과도 무관할 수 있다.과 만날 때다른 맥락은 곧잘 소거된다. “김기영의 영화는 (중략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기존 영화나 이후의 에로 영화와” 거리가 있다고 볼 수야 있겠지만, 욕망과 포장은 힘이 세 그런 것들을 무시해버린다두 번째 배경은 김기영과 에로 영화의 근접성이다거리가 있다고 했지만실은 거리가 별로 없기도 했다최소한 <자유처녀>(김기영, 1982)부터는 그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가령 그의 마지막 연출작 <천사여 악녀가 되라>(김기영, 1990)에는 분명 김병규의 말처럼 저급한 스트립 댄서의 신체 클로즈업동시대에 양산된 에로영화풍의 섹스 장면이 담겨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1970년대 후반부터 김기영 영화의 조감독연출부페르소나격 배우는 모두 에로 연극/영화 감독이 되었다. 김기영 영화에 에로가 침투할 수 있는 폭이 매우 컸다라기보다는실은 그냥 그가 에로영화 감독이기도 했던 것이다. <화녀>와 <복카치오 92>의 거리는김기영이 정전화된 이후의 우리는 그 둘을 매우 멀리 떨어트려서 보고 있으나얼마든지 가까울 수 있었다.


류승완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알게 모르게 나도 김기영 감독을 제대로 알리는 데 한몫 했다고 할 수 있는데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에로 코너에 있던 <화녀>와 <육체의 약속>을 고전 명작 코너에 옮겨 꽂아놓았으니까 말이다.” 이 말은 김기영 컬트의 배경과 결과를 압축한다도색 엉터리 커버 비디오 사이에 꽂혀있던 김기영의 비디오는이제 소위, ‘걸작의 이름 아래 블루레이로 파일로 유통되고 있다그러나 이 옮겨 꽂음의 과정에서 김기영 영화가 갖고 있던 변태성 비천함은 사회성·정치성으로 감싸진다김기영의 조감독 강철웅연출부 송명근, 70년대 페르소나 김정철이 에로영화 감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류승완이 비디오를 옮겨 꽂기 전의 진열대를 상상해보자. <비밀정사>(송명근, 1992)와 <밤비는 여자를 적신다>(김정철, 1990) 그리고 <화녀>(김기영, 1971)와 <육체의 약속>(김기영, 1975).


그런데 이제이것을 도색 비디오 진열대로 상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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