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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Dec 07. 2022

자주영화, 신정원 감독 추모전

딱 한 달 전 은열 님의 블로그에서 공유한 ‘자주영화 사발통문’의 전거라 해도 좋을 인터뷰가 오늘 영상으로 올라왔다. 자주영화라는 말은 굳이 자주영화라 이름 붙여 본다는 점에서 적대를 전제하지만, 자주라는 말이 주는 자율성의 효과도 가진다. 구속적이지만 구속적이지 않다. 이 영상을 찍기 전 은열 님과의 대화에서 광인狂人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광인: 그들은 상황을 무시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자들이다. 나는 요즘 그들이 정당한 상황에서 올바른 말을 했음에도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발언권을 부인당한 사람들에게는 모멸의 과거가 끊임없이 지연되고 반복된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과거의 광인들로부터 배우며, 〈우리〉의 세대에서 광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하간, 한 명의 평자로서 제안했던 말들이 행정을 통해 실현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무척 값진 일이 아닐 수 없다. 


https://youtu.be/h59S4NkhDgs


지난 토요일 12월 03일에는 부산의 복합문화예술공간 ‘무사이’에서 열린 신정원 감독 1주기 추모 상영회에서 친애하는 박동수(박동수 평론가의 글), 조일남 평론가와 함께 토크를 했다. 돌아보면 내가 근 과거에 대해 갖는 관심은 엉망진창(으로 비치는) 200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세기 말의 공포가 엽기로 치환되고, 인터넷에는 구멍이 숭숭 나있고―게임 이름인 그랜드체이스를 그랜드‘채’이스로 잘못 검색하면 음란 사이트가 떴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비디오 가게에는 고개를 돌리면 도색 진열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는 〈교도소 월드컵〉, 〈광복절 특사〉, 〈마파도〉,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같은 영화만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신정원은 그런 00년대 초반을 압축하고 있는 감독처럼 항상 느껴졌던 것 같다. 2003년을 기점으로 출현한 ‘웰메이드 한국영화’의 역사는 감추고 싶지만, 신정원은 벽장 속의 시체(는 실로 〈시실리 2km〉,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의 주요한 상황인데)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것이 한국영화야!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작년 이맘때 쓴 표현을 빌리자면, 신정원은 늘 “충무로의 찌꺼기”를 활용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2021년 신정원의 죽음에서 00-20년까지의 한국영화의 어떤 역사가 닫히는 느낌을 받았다. 신정원은 한국영화의 근과거를 육화한 사람 같이 느껴졌다. 더럽고―그거 물똥이라매!―말도 안 되며―주리, 내 얼굴 봐 주리?―뜬금없고―비달사순?―엉망진창이었던―죽었다...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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