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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Jan 06. 2023

옛날 평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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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4월 출간된 『영화예술』 4권 3호에는 허우 샤오시엔이 쓴 (걸로 보이는) 「대만 신 영화선언」이라는 글이 실려있다. 허우 샤오시엔의 글 말고도 『영화예술』의 목차를 살펴 보면 크리스티앙 메츠나 유리 로트만 같은 많은 외국인의 글이 번역되어 있다. 옛날 한국 영화 잡지를 보다보면 여러 번역 글을 만날 수 있다. 퍼킨스가 히치콕에 대해 쓴 글도 본 것 같고. 뭐 많다. 그런데 이런 번역의 역사는 거의 눙쳐지는 것 같다. (물론 이에 대한 연구 논문도 있다.) 이걸 조금 더 부풀려서 말하면, 현재 우리에게 KINO 이전의 영화문화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영화나 영화감독의 일화 들은 가끔씩 전달 되지만, 문화라고 우리가 부르는 그 영역은 뭔가 깜깜이 같다. 그때의 시네필들("은막광인")은 어떤 잡지를 보고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했을까? 


이런 맥락에서 새삼 정성일이 거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성일 이전 시대 한국의 평론가를 사람들은 잘 모른다. KINO와 동시대에 출간(정확히는 복간)된 『영화예술』의 번역들은 "오역이 많았다" "엉터리였다" 같은 말들도 안 돈다.  정성일은 시대를 한 번 구부린 사람이었다. 선승범의 「성장소설: 정성일과 그의 시대」는 내가 그해 읽은 가장 감동적인 글 중 하나였다. '000과 그의 시대'라는 문형은 000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레토릭이고 「성장소설~」도 그렇게 읽혔었다. 소세키와 에토 준, 이광수와 김윤식처럼. 요즘은 정성일 생각을 많이 한다. 


정성일은 옛날 평론가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무언가 기획을 할 수 있는 돈과 권력이 있다면 정성일과 허문영에게 옛날 평론가들에 대해 말하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다. 한 명 더 끼울 수 있으면 임상수. 정성일은 분명 평론가의 계보를 알고 있었다. 가령 KINO 2000년 09월 호에는 「한국영화의 동시대성」이라는 제하에 한국 영화평론가 서른 명에게 질의응답을 받았다. 그 서른 명에는 이영일, 호현찬도 껴있다.


https://ia801404.us.archive.org/19/items/KinoPdf/2000_09_0009094.PDF


허문영과 임상수는 아버지가 영화평론가였다. 허창과 임영. 허문영과 임상수가 그들의 아빠에게 코멘트를 한 것은 무척 짧지만 자주 기억난다.  


허문영_ 거의 없어요. 아버지는 얘기를 하려고 하셨는데, 제가 피했어요. 의견이 달라서가 아니라, 아버지란 존재 자체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하나 기억나는 건 있어요. 대화를 나눴다기보다는 그냥 일방적으로 들은 건데, 좀 전에 말씀드렸지만 저한테 한국 영화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준 게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라고 말씀드렸는데, 90년에 <그들도 우리처럼>을 보고 말 그대로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냥 아, 이건 정말 걸작이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아버지가 그때 대종상 심사 예심을 할 땐가 본심을 하실 땐가 인데, 그때 잠시 같이 살았던 때인데, 피할 수 없이 얘기를 해야 하는 자리가 있잖아요, (웃음) 같이 밥을 먹어야하는 자리. 그때 <그들도 우리처럼>을 봤는데 그건 한국영화사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나는 이 영화가 대종상 본심에 올라오지 않은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심사를 안 하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과장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어요. 내 기억이 조금 과장되었을 수도 있는데,.. 제가 절대 피해왔지만, 일상적인 대화와 영화에 관한 대화를 피해왔지만, 갑자기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두 가지가 분명해졌죠. 이 사람이 나하고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완전히 공감을 하고 있구나, 그건 쉽지 않은 체험이잖아요. 영화 글을 찾아 읽었을 때도 아니니까. 또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은 비평가구나. 자기가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영화가 존중받지 않았을 때 자신의 선택을 어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 비평가구나, 괜찮은 사람이구나... 이게 얼마나 사실에 근거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대화밖에는 내 머릿속에 남은 게 없어요. 자기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한 영화가 대종상 본심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해서 대종상 심사위원을 거절한다, 정말 비평가적인 태도잖아요. 물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계속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웃음) 여전히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부담, 무게가 버거웠으니까. 그래도 그때 그 말은 계속 기억이 나요.  https://www.kmdb.or.kr/story/5/1339


나는 허문영을 굉장히 신뢰하고 (정확히는 했지만에 가까운데, 가령 그가 연상호의 〈지옥〉 같은 졸작을 올해의 영화로 꼽은 건 너무 의뭉스럽다) 좋아해서 (나는 허문영이 한겨레에서 연재한 글들을 지금도 자주 읽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미셸 래리스의 『성년』도  그의 글을 통해 알았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1260.html 한편 이 글을 쓰기 1년 전 크리틱에서 허문영은 트럼프를 지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도 했다. 허문영에게 그것은 미셸 래리스가 말하는 투우의 뿔이었을 거다.) 이 대목을 읽고 허창이 무척 궁금했었다. 그렇지만 허창에 대해 나는 아직 거의 모른다.


임영에 대해서는 꽤 아는 게 많다. 그는 1950년대 오영진 영화에 감히 표절 시비를 건 평론가였다. 한국일보의 해직 기자이기도 했다. 참 임상수 아빠 답다는 생각도 했다. 임영은 『한국영화를 말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1』(https://www.koreafilm.or.kr/kofa/publication/books/PB_0000000008)에 구술사가 남아있기도 하다. 여하간 임상수는 〈그때 그 사람들〉 개봉 당시 그의 아버지에 대해 자주 말했다. 나는 그가 임영을 평한 대목들을 정말로 모두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구상을 했다고 들었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언젠간 10·26에 대해선 꼭 이야기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이 내게 준 충격은 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인데 당시 아버지(영화평론가 임영)는 반골기질의 실직 기자였고 대학생이던 형은 매일 유신 반대 데모에 참가했다. 이런 분위기였으니 나는 정치적 의식이 웃자랐다. 대통령이 급서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너무 좋아하셨다. 그리고 난 당연히 아버지의 아들이었으니…. 실직 가장 집안의 어두운 분위기가 놀랍도록 밝아졌다. 하지만 대통령 장례식 때 연도에 늘어선 사람들이 그렇게 우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뒤로 10·26 관련한 모든 기사를 세심히 읽었다. <바람난 가족>을 찍기 전 프리프로덕션 도중 이은 명필름 대표에게 이 프로젝트를 얘기했다. 이은 대표는 15분쯤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자고 했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27751


남재일 
어디선가 자신은 ‘정신적인 귀족’이라고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철학적 귀족’이란 말은 들어봤는데, 아마 같은 말인 것 같다. 그런데 그거 하면 배고프고 외로워진다고 그러던데….
임상수
그건 우리 아버지가 수입이 없는 사람이어서 잘해주지 못하니까 애들 앞에 앉혀놓고 한 말이다. 내가 수입이 없어서 너희가 이렇게 못살지만 정신적으로는 귀족이다라고. 나한테는 그게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이득을 위해 무릎 꿇은 적이 없다. 아버지는 개인적인 문제로 <한국일보>에서 해직당한 기자였다. 그때 박정희가 비판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한국일보>도 내부적인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점에서는 아버지가 이 영화의 공동창작자라고 생각한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28646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여기다


남재일 
당신의 영화는 매우 공격적이고 신랄하게 발언한다. 지금 ‘아버지’라고 표현한 부분일 수도 있겠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공격하고 싶은 건가?
임상수 
나는 모든 권위 혹은 권위주의를 철저하게 경멸한다. ‘그때 그 사람들’을 본 사람들은 임상수가 이렇게까지 존경심이 없다는 데 당혹해한다. 좌파와 진보적인 사람들까지도. 그런 걸 보면 나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경멸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경멸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조롱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조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뿌리 깊은 속성부터 아무런 존경심이 없다. 그 근원은 내 부친이다. 그는 존경심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 출세한 사람에 대해 가지는 질투가 있었지만, 나는 한 세대를 겪고 나오면서, 그 질투를 정확하게 걸러냈다. 그의 경멸만을 물려받았다. 경멸하려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만큼도 존경할 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허투로 존경받고 있다는 치명적인 사실 말이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28645


"그는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 출세한 사람에 대해 가지는 질투가 있었지만, 나는 한 세대를 겪고 나오면서, 그 질투를 정확하게 걸러냈다. 그의 경멸만을 물러받았다." 


임상수는 말을 참 잘한다.


여하간 이런 맥락에서 데이비드 보드웰의 『미국 영화비평의 혁명가들』의 한국 버전 같은 것을 써보고 싶다. 비록 그들은 파버도 에이지도 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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