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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Feb 09. 2023

한국영화 그리고 김지운과 <거미집>


신연식이 <동주> 개봉 즈음에 '예술인 시리즈' 시나리오에 대해 말한 적 있다. 신연식은 준비된 인물로 코미디언 신불출, 가수 이난영 그리고 영화감독 김기영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신연식의 김기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출된 것으로 알려진 <거미집>(김지운, 2023)의 스틸 이미지가 떴다. 나는 이 영화를 여러모로 기대하고 있다. 신연식이 각본을 쓴 <동주>(이준익, 2016)는 2010년대 한국영화의 예외적인 성취였다. 많은 사람이 이미 지적한 바 있듯 <동주>는 세월호 이후에 대한 한국영화(이 범주에 속하는 영화로 <엑시트>나 <내 친구, 정일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였다. 이준익이 결국 <변산> 같은 쪽으로 흘렀다는 데 굉장한 유감이 있지만, 그래서 더욱 각본을 쓴 신연식을 기대하게 된다. 다른,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기대는 개인적인 이유다. 내가 김기영에 벌써 5년 남짓을 매달리고 있다는 점. 물론 <거미집>이 김기영 전기 영화가 아니라고들 하지만(김기영을 모티프로 한 영화라고…) 벌써부터 실제의 김기영과 그 주변을 <거미집>의 김기영과 그 주변과 빗대어보고 있다.  

가령… 김기영은 저렇게 머리를 기르지 않았다. 이하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김기영은 항상 머리를 짧게 잘라왔다. 이 김기영의 머리 스타일이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꽤 클 수 있다.  



<바보사냥> 촬영 당시 김기영
1960년 한국최우수영화상시상식 사진. 왼쪽부터 김기영, 신상옥, 김승호.

(나는 이 사진을 무척 좋아한다. 김기영과 신상옥은 여러모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열녀문>과 <고려장>의 표절 소동에도 역사가 있다. 196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두 감독. 둘은 아주 다르다. 김기영이 지극히 개인적인 스타일과 아마추어리즘 그리고 다양한 양식을 받아들이는데 골몰했다면, 신상옥은 '신필름'이라는 한국영화산업을 근대화하고 프로페셔널리즘을 정착하고자 많은 협잡을 꾸몄다. '남한영'화사의 큰 맥락은 어쨌건 두 사람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한편 정수정은 기대가 된다. <바보사냥>(김기영, 1984)에 출연하는 엄심정 배우는 정수정과 무척 닮았다. 어떤 역할로 나올지 궁금하다. 김기영 영화에서 연기한 배우들은 그 시대와 약간 떨어져서인지 동시대의 다른 배우들과 견줘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이유는 <거미집>의 감독이 김지운이라는 점이다. 나는 옛날부터 김지운이 의식적으로 이만희를 참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2006)은 만주웨스턴, 그 중에서도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 1971)와 닮은 것 같았다. <인랑>(김지운, 2018)에서 <암살자>(이만희, 1969)를 떠올리지 않기란 어렵다. 복수의 원환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의 세계 속 빨간 옷을 입은 여성들. <밀정>(김지운, 2016)의 '무드'는 어떠한가. 




이런 맥락에서 김지운이 김기영 전기 영화를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왜? 왜 이만희가 아닌데?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봉준호나 박찬욱이 김기영 전기 영화를 연출한다고 한다면 느꼈을 자연스러움, 혹은 심드렁함과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한 가지 가설은 있다. 공교롭게도 김지운은 김기영이 죽기 며칠 전, 눈 내린 오르막길을 총총, 불안하고, 재촉하듯 올라가는 뒷모습이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강렬했다고 말한 바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tjXdYPdpm4&feature=youtu.be 43부 20초부터 참조)


이런 장면이 <거미집>에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망상도 하고.

<거미집>을 초과해서 재밌는 것은 한국영화의 어떤 경향이다. 신수원은 <오마주>로 홍은원의 <여판사>를, 봉준호는 <기생충>으로 김기영의 '하녀' 연작을, 박찬욱은 <헤어질 결심>으로 김수용의 <안개>를  가져오고 있다. 소위, '방화'와 '한국영화'의 단절이 완벽하게 성취되어 '방화' 시기의 작품을 하나의 단위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온 걸까? 여기에 <기생충>의 세계영화제 수상이 어떤 콤플렉스의 해결로 작동하지는 않았을까? '한국영화'에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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